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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웅덩이 Oct 26. 2024

피아노 배우기

피아노는 어릴 때 배우는 악기인 줄 알았어요

피아노는 젊은 시절부터 배우고 싶은 악기였다. 학창 시절에는 오 형제를 대학에 보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시는 어머니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손가락이 굳어서 이제 배우지 못하는 악기라고 뒷전으로 제쳐두었다.  마흔아홉의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찬송가 반주를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퇴근 후 여가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조바심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동생의 말이 용기를 내게 했다. 5년 정도만 배우면 찬송가 반주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침 다니는 교회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 나와 비슷한 나이인 데다 피아노를 잘 치시기에 배워보기로 했다. 


처음 학원을 찾아갔을 때 원장님은 우려의 말을 던졌다. 지금까지 어른들이 배우려고 와서 3개월을 넘긴 적이 없었다고 했다. 무작정 거절하기 힘들었는지 언제든 그만두고 싶으면 부담 갖지 말고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관계가 어그러질까 두려운 눈치였다. 한 손으로 도레도레를 치면서 첫날은 피아노 건반과 친해지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배움이 원장님의 우려와는 달리 3개월이 지나고 2년이 흘렀다. 


코드 연주도 하고 피아노에 흠뻑 빠져 있을 때, 자궁근종으로 인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몸을 추슬러야 해서 한동안 피아노학원을 쉬었고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학원에 갔다. 그런데 피아노 실력이 1년 전 수준으로 밀린 것 같아서 실망이 컸다. 피아노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때, 원장님은 2개월이면 멈추었던 수준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며 용기를 주었다.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5년이라는 기간이 지나고 어린 학원생들과 함께 학원 연주회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울렁증이 심해서 무대에 서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두 달 동안 손이 암기할 정도로, 정해준 두 곡을 연습했고 무대에 서는 날이 왔다. 마침 서울주 문화센터가 새로 지어져서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로 했는데, 무대에는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리허설을 위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보니 나무를 두드리는 느낌과 함께 청아한 소리가 났다. 악기의 종류에 따라 음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리허설은 엉망이었지만 실제로 연주할 때는 틀리지 않고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늦은 배움의 시간이지만 알찬 열매를 거두었고, 배운 피아노가 또 다른 영역으로 나아갈 디딤돌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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