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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웅덩이 Oct 12. 2024

전자동포장기

8년 차 기계들

8년 전 면접을 보고 약제실에 들어섰을 때 전자동포장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적은 병상의 요양병원에서 보기 힘든 기계였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격이 비싼 이유로 선뜻 기계를 들여놓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8년 이상을 함께 해 온 포장기가 최근에는 자주 멈춘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기계의 수명이 다해가는 거라고 고치러 온 직원이 말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하다 보니 동료처럼 가깝고 반가운 기계다. 출근을 하면 차례로 버튼을 눌러서 기계를 켠다. 일정 온도가 올라가면 기계는 일하기 시작한다. 정규약이 있는 날은 하루종일 일한다. 환자명, 약품 이름과 날짜, 병동, 복용법 등 많은 정보들이 ATC로 포장한 약포장지 위에 적힌다.  명함과도 같다. 


요즘 들어 한참 약을 짓다 보면 기계가 갑자기 멈춘다. 한 여름 습기로 인해 그런 줄 알았는데 날씨와는 상관없이 점점 자주 멈추게 된다. 부품이라도 교체하면 좋아질 듯도 한데 새로운 기계에 대한 긍정적인 제안이 들어와서 이사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자동차처럼 8년 차 기계는 이제 수리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약제실 안에 있는 다른 기계들도 조금씩 삐거덕 거리고 있다. 프린트도 시작버튼을 누르면 가끔은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떤 때는 용지가 말려서 나오지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수리센터에 가면 고치는 가격보다 새로 사는 게 더 낫다고 해서 완전히 고장 날 때까지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조금씩 삐거덕거리고 있는 약제실의 기계들을 보면서 서서히 늙어가는 나를 보게 된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나이이기에 여기저기 아픈 데만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계가 멈추면 나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 여러 번 시동을 거느라 지칠 때도 있지만 기계 때문에 마음까지 힘들어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노쇠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련해지고 있다. 다양한 변수에 잘 대응할 줄도 알고 조바심을 버리고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기계는 수명을 다하면 새로 교체하면 될 일이다. 그간의 정리(情理)를 끊느라 기계가 자주 멈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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