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병원 응급 키트와 병동 의약품 비치장에는 혈관으로 빠르게 당을 공급하는 응급용 포도당 주사제가 있다. 저혈당 쇼크는 치료 시기를 놓치면 뇌에 치명적인 응급 상황으로 이어지기에 환자가 저혈당이 왔을 때 투여하기 위해 구비되어 있다. 당의 관리가 원활하지 않는 환자에게도 나타나지만 평상시에 건강한 환자에게도 가끔 나타난다.
어버이 주일 교회 점심은 전복 죽이었다. 대체로 밥이나 국수가 나오는 데 그날은 죽이었다. 물김치와 진기떡 두 개, 수박 두 조각을 먹고 설거지 당번이라 교회 식당으로 향했다. 기름기가 없어서 설거지는 손쉬웠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주일 식사는 고기나 튀김으로 그릇 수도 많고, 기름기가 있어서 설거지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 날 식사 당번이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앞치마를 입는다. 하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식기 수도 적은 날은 흥을 내며 설거지를 한다.
오후 예배를 드리기 전까지 여유가 있어서 집에 잠시 왔을 때 뱃속이 허전했다. 오는 길에 사 온 빵을 몇 개 먹고 나니 조금 힘이 났다. 남편은 배가 나온다며 빵을 거부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나누어 마시며 체중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더 이상 빵을 권하지 않았다.
오후 예배가 끝나면 습관대로 무풍한송로에 산책을 나간다. 한 주간 집과 직장만 오가는 아내를 운동시키기 위해 정한 남편의 배려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통도사 산문 입구를 지날 때 남편은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고 했다. 저혈당이 온 것 같다면서도 이때를 잘 참아야 뱃살이 빠질 거라며 씩씩하게 걸음을 재촉했다. 뇌가 힘들어 할 수도 있다며 나는 걱정 어린 말을 던졌지만 호주머니에 사탕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게 아쉬웠다. 통도사 성보 박물관 앞을 지날 때 길 가 벤치에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이들이 많이 보였다.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먹고 갈까?"
"안돼, 배 나온다."
박물관을 지나 새롭게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개울에는 겨울새 한 마리가 먹이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개울물 한가운데 꼿꼿이 서 있다. 사람들의 발소리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직 먹이에만 집중을 하는 모습이 꼭 당 떨어진 사람 같았다.
'제도 저혈당인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다리를 건너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다시 성보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아이스크림 먹고 가자. 식은땀이 난다."
남편은 빠르게 말을 던지고 얼른 매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두 개 주세요."
"육천 원입니다"
남편은 가격에 잠시 놀라면서도 얼른 카드를 꺼냈고, 우리 손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 가득 물었다. 뇌가 쾌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이고야 이제 살 것 같다."
남편의 이런 멘트는 지금껏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우리 부부도 적은 나이가 아니기에 무리한 운동이나 다이어트는 피하려고 한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민감하게 대처를 하고 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몸도 마음도 잘 추슬러야 하겠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 산책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