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한 살, 감정 한 겹

우리 집 네 식구의 생일은 사계절을 닮았다.

by 라라


매년 같은 날짜, 같은 알림, 같은 형식의 축하 메시지.

하지만 내 마음은 매년 같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생일을 즐겁게 보냈다.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면 서운할 것 같고, 시끌벅적하면 또 피곤한 나이.
그래도 케이크에 초는 하나쯤은 꽂아줘야 뭔가 생일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생일인데’라는 말을 괜히 한두 번쯤 흘리게 되는 날이기도 하고.



우리 집 네 식구의 생일은 사계절을 닮았다.
나는 여름 한복판, 딸도 비슷한 무더위 속에 태어났다.
남편은 칼바람 부는 겨울, 아들은 포근한 봄날의 아이.
그래서 그런가, 성격도 참 제각각이다. 여름 모녀는 다혈질, 겨울 아빠는 과묵, 봄 아들은 상냥한 편이다.

예전에는 생일을 속으로 기대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달력에도 안 써놓고, 직접 말도 안 하면서 ‘혹시 누가 기억해주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바람을 품곤 했었다.
어느 해는 그렇게 서로 까맣게 잊어버려서 생일이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땐 나도 모르고 지나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서로 아무 감정 없이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아이들이 가족 생일을 달력에 하나하나 써두기 시작했다.

이젠 생일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슬슬 떠본다.
"엄마, 요즘 필요한 거 있어?"
"요즘 뭐 갖고 싶어?"
대놓고 묻진 않지만, 이미 준비가 시작된 사인이다.

아이들은 없는 용돈을 모아 십시일반 선물을 준비한다.
딸은 편지를 정성스럽게 쓰고, 아들은 유치하게 “엄마 짱! 사랑해요!” 같은 문장을 큼지막하게 써서 준다.
그게 그렇게 웃기고 또 감동스럽다.
남편은 미역국을 끓인다.

말없이 부엌을 서성이며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이 사람, 물 끓이는 것도 살짝 긴장했구나’ 싶어서.


반대로 내가 가족 생일을 챙길 땐 진수성찬을 준비한다.
미리 장 보고, 생일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식탁을 채우고, 케이크도 예쁜 걸로 골라 온다.
그리고 꼭 사진을 찍어둔다.
장난처럼 남편에게 말한다.
“나 이렇게 정성 들였으니까, 내 생일엔 기억해 뒀다 부탁해요~”
그러면 남편은 익숙한 투로 “그냥 외식하자… 이렇게까지는 하지 마…” 하며 손을 휘휘 젓는다.
근데 외식하자 해놓고 결국 그날도 미역국은 끓이더라.


나이 한 살을 더 먹었지만, 딱히 달라진 게 없다.
몸은 쉽게 피곤하고, 마음은 예전처럼 설레지도 않는다.
"나이 먹는다"는 말이 그냥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는 한 살 더 먹는 게 자랑이었는데, 지금은 짐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거울 앞에서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나…?’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서 아쉽다.

10대가 된 아이들을 보면, 이 아이들도 이제 곧 집을 나설 준비를 하겠구나 싶어 아득해진다.
그런데도 참 대견하다. 잘 자라주고 있어서.


언젠가 아들이 어버이날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카네이션 화분을 두 개나 사 왔다.
작은 손으로 꽃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엄마, 아빠! 고마워요!” 했던 그 모습.
그날의 감격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지만 생일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뭘 이뤘을까?
이 나이에 이 모습이어도 괜찮은 걸까?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데, 나는 잘 살아오고 있는 걸까?

누구의 축하보다, 나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생일.
자책과 회의가 밀려오는 순간들.
불안한 미래와 아직 이뤄놓은 게 별로 없다는 허탈감.
어쩌면 생일이라는 건, 내 삶을 점검하게 만드는 리셋 버튼 같은 날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본다.

뭐 이렇게 심각할 것까지야 있나?
조금 부족해도, 다듬어가는 중이잖아.
매끈하진 않지만, 감정이 한 겹 더 생겼다는 건 분명하니까.
기쁨, 서운함, 감사, 불안, 다정함…
그 모든 감정이 생일마다 한 겹씩 내 안에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선물 없이도, 외식 없이도,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는 ‘몇 살이냐’보다 ‘어떤 마음을 품고 있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 늦게, 하지만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생일 아침이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무더운 여름에 저 낳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면 엄마는 늘 같은 목소리로 “그래, 생일 축하한다” 하신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몽글해진다.

결국 생일은,
태어난 나보다
그날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덕분에 따뜻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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