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오해를 겪는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그렇게 엉킨 감정의 실타래는 결국 관계의 끈을 놓게 만들기도 한다.
해명할 기회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때로는 그 타이밍조차 놓쳐버려 억울함이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기도 한다.
어떤 때는 해명이라는 말조차 '변명'처럼 들릴까 봐 아예 말을 아끼게 될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을 몇 번 겪었고, 그중 하나는 내 첫 직장에서의 일이었다.
첫 근무지는 검사센터였다.
나는 임상병리사라는 일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쉽게 말하면 병원이나 검사기관에서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 등을 채취해 각종
검사를 진행하는 직업이다. 병원이 소속 된 곳이 였고, 규모가 있는 검사센터에서 일했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지 않았고, 반자동 시스템이나 수기로 결과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실수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날은 임신 가능성을 확인하는 혈액검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과 검사를 나누어 맡았는데, 처음에 나온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와 재검을
하게 됐다.
그런데 재검 결과가 이전과 전혀 다르게 나왔고, 그제야 동료 선생님이 다른 환자의 샘플을 잘못 넣고
재검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결과는 병원에 보고된 뒤였고, 우리는 급하게 실장님과 원장님께 보고했다.
원장님이 직접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다시 검사를 진행해 정확한 결과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샘플을 잘못 넣은 건 그 선생님이었지만, 나도 함께 작업했기에 같이 꾸지람을 들었다.
그 상황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료의 태도는 정말 아쉬웠다.
정중한 사과 한마디만 있었어도 억울한 마음은 훨씬 덜했을 텐데 말이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부턴 재검할 때 환자 이름 꼭 확인하고 진행해 주세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황당했다.
"선생님도 같이 보신 거 아니에요?"
정작 본인은 혼자 샘플을 넣고, 뚜껑을 닫은 뒤 start 버튼을 눌러 진행해 놓고서 말이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고, 결국 한숨만 쉬고 말았다.
그 후로도 그 선생님은 다른 파트너와 근무할 때에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그제야 다른 직원들도 그 특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다들 검사를 할 때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확인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이 있고 한동안 마음이 상한 채로 지냈고, 출근길이 무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살다 보면 이런 억울한 오해를 겪는 일이 자주 생긴다.
사소해 보이는 오해라도, 그 당사자가 내가 되는 순간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해는 더 쉽게 생긴다.
자주 마주하고 자주 부대끼는 사이일수록 기대는 마음도 크고, 그만큼 기대에 어긋났을 때 생기는 감정의
골도 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오해를 덜 받고 살 수 있을까?’
결론은 단순하다.
오해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지만, 오해를 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가능하다.
사과를 먼저 건네는 용기, 설명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
이런 것들이 쌓여서 결국 신뢰를 지켜주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누구나 오해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오해를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법을 배워간다면, 관계는 더 깊어지고 사람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오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이해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