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땅거미를 바라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라던, 나와 동갑내기 친구 선영이.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함께였고, 생일이면 서로의 집에서 작은 파티를 열며 웃음소리를 쌓았다.
그 시절의 땅거미는 언제나 우리 둘의 놀이터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고, 선영이는 이사를 갔다.
멀리 떨어졌지만 연락은 이어갔고, 오랜만에 만나면 해가 질 때까지 놀곤 했다.
어느 날은 너무 늦도록 놀다 엄마가 날 데리러 오신 적도 있었다.
그때 선영이와 헤어질 때의 아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우리는 바빠졌다.
나는 공부에 매달렸고, 선영이는 취업을 위해 서울로 갔다.
그 후 짧게 만났을 때, 예전처럼 환하게 웃던 모습은 조금 사라져 있었다.
“힘들지 않아?”라고 묻자 선영이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 웃음 속에 담긴 무게를 나는 끝내 헤아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엄마에게서 선영이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였지만,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묻고 싶었지만, 더는 캐묻지 못했다.
그 후로 선영이와의 연락은 점점 끊어졌다.
몇 년이 지난 뒤, 엄마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선영이가 우울증으로 몇 차례 삶을 놓으려 했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한참을 울었다.
서울에 올라가 보니, 내 곁에 있어야 할 선영이는 사진 속에만 남아 있었다.
“선영아,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나는 그날 이후로 땅거미가 지면 네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해 질 녘의 놀이터에 있던 너, 함께 뛰놀던 웃음소리, 그 설레던 순간들이 가슴속에서 되살아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이해하려 하지만, 보고 싶을 땐 원망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바라는 건 하나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부디 행복하기를.
오늘도 나는 땅거미를 바라본다.
그 속에서 울리는 이름 하나, 선영이.
그 이름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