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만약 세탁기가 없었다면 지금 현대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아마 매일같이 손빨래에 허리와 손목을 혹사시키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첫 직장을 얻고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산 것도 세탁기와 냉장고였다. 그 두 가지가 없었다면 삶의 질은 뚝 떨어졌을 게 분명하다. 자취 시절에는 통돌이 세탁기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드럼세탁기와 건조기를 세트로 쓰는 시대가 되었다. 디자인도 세련되어서 마치 가전제품 전시장에 온 듯하다.
집안일 중에서 빨래는 남편의 담당이다. 남편은 세탁물을 분류해 세탁기에 넣고, 다 돌리면 건조기로 척척 옮긴다. 그런데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어느 날은 빨래를 다 돌리고 건조기를 열었는데, 하얀 셔츠가 분홍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유는? 아이의 빨간 티셔츠가 슬쩍 끼어 있었던 것! 그날 이후 우리 집 빨래 바구니는 무려 다섯 개로 늘어났다. 수건, 속옷, 양말, 흰옷, 검은 옷. 아이들도 스스로 바구니에 옷을 구분해 넣을 수 있도록 교육(?)을 했다. 처음엔 귀찮아하더니, 요즘은 아이들이 서로 "이건 흰옷 바구니야!" 하며 놀듯이 분류한다. 작은 습관이 가족의 규칙이 된 셈이다.
사실 세탁기만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주기적인 청소도 필수다. 우리 집은 6개월에 한 번씩 수리 기사님을 불러 세탁기를 청소한다. 한 번은 기사님이 청소를 마치고 필터를 보여주셨는데, 거기서 나온 시커먼 물때와 먼지를 보고 아이들이 “엄마, 우리 진흙탕에서 빨래한 줄 알았어!”라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는 청소날이 오면 아이들이 먼저 "오늘은 세탁기 대청소 날!" 하고 챙긴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집처럼 베란다가 없는 구조에서는 빨래를 말릴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건조기를 돌리면 먼지도 없이 보들보들하고 향긋한 빨래가 나온다. 그 순간만큼은 피곤한 하루도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이다.
결국 세탁기는 단순히 옷을 깨끗하게 해주는 기계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생활의 규칙을 만들고, 작은 해프닝을 웃음으로 바꾸게 해주는 고마운 동반자다. 세탁기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 집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옷 왜 색깔 변했어!”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