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앵무새를 주로 조류를 판매하는 가게나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길거리나 공원에서도 앵무새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주인에게 길이 들어서인지, 사람들이 다가와도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 구경을 하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예전에 살던 동네의 공원에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
세발 전동차를 몰고 오시는 한 어르신이 계셨는데,
그분은 늘 어깨 위에 앵무새 세 마리를 태우고 산책을 하셨다.
그 주변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처음엔 왜 그런가 궁금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어르신의 어깨 위에서 앵무새들이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와도 놀라지 않고, 마치 그 자리가 자기 자리인 듯했다.
우리 아이들도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그 어르신도 아이들의 시선을 즐기시는 듯했다.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앵무새야, 나 따라 해봐!”라고 말했지만,
앵무새는 묵묵히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인이 한마디 하면
세 마리의 앵무새가 동시에 그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잠시 지루해지면 하늘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주인의 어깨로 날아와 자리를 잡곤 했다.
그때의 풍경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
서울대공원에 놀러 갔을 때 또다시 앵무새를 만났다.
조련사의 손짓에 따라 날아오르고,
던져주는 먹이를 정확히 받아먹는 재주에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조련사가 말을 걸자, 앵무새는 재빠르게 따라 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 가족도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봤다.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켠이 조금은 짠했다.
조련사의 말에 따라 움직이고,
자유로운 날개를 가졌으면서도
언제나 사람의 손짓을 기다리는 그 모습이
묘한 안타까움을 남겼다.
앵무새는 지혜, 아름다움, 모방, 자유, 그리고 결핍을 상징한다고 한다.
말을 하는 새로 알려져 있지만,
그 말이 자기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문득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람의 말을 따라 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다.
누군가의 말투를, 누군가의 생각을,
무심코 따라 하며 살아가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일까.
앵무새의 눈을 바라볼 때면,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나는 지금, 내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