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지 마세요

아직 나의 자리입니다.

by 라라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분명 나는 나로 눈을 떴는데, 하루 종일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날.

커피를 마셨는데 단맛이 좋다. 나는 원래 쓰면서 탄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했는데.

사람 많은 데를 좋아한다. 나는 원래 집순이인데.

심지어 누가 내 입으로 "운동해야겠다"이랬다.


내가?


이쯤 되면 확실하다. 누가 내 몸에 들어왔다. 빙의다. 귀신이든, 전생의 나든,

의욕 넘치는 '나의 반대편'이든.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려 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싶은데 몸이 들썩 다시 내려가고..

들썩 다시 내려가고.. 내 뜻대로 되질 않는다.

아등바등 몸부림도 쳐본다.

그런데 눈도 떠지지 않고 누군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쩔 땐 포기하고, 어쩔 땐 땀을 흘려가며 몸에 계속 힘을 준다.

이건 꿈일까? 아님 진짜 빙의일까?




처음엔 무서웠다.

진짜 무슨 영혼이 들었나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 기도도 드려보고.

너무 무서워서 인터넷에 '빙의'이라고 검색을 해 보았다.

댓글이 달렸다.

"나도 회사 다니면서 영혼 나감"

"오늘은 자존감이 빙의함. 낯설다"





그제야 알 것 같기도 했다.

이 시대의 빙의는 꼭 귀신만의 일이 아니다.

SNS 속 누군가가 될 때,

잘난 척하는 자기 계발서가 머릿속에 들어올 때,

그건 이미 나 아닌 무언가가 들어온 거다.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나의 자리입니다".


다시 나로 들어오는 일

그건 결국, 나를 지켜내는 작은 연습이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으로 조용히 말해본다.

들어오지 마세요.

여긴 아직 내가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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