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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8. 2019

나1

다시 나에게





 냉장고 같은 방이 있었다. 여름이면 그 작은방에 슬쩍 들어가 몸을 식히고 마루로 나와 선풍기를 틀고 잠을 청했다. 그 방주인은 중2 내 아들이다. 만화책부터 시작해서 무협지 판타지 소설 다양한 책들을 침대 위에 산더미만큼 올려놓고 쩝쩝대는 새우깡 씹는 소리와 과자 부스러기를 마구 흘려대며 "끄지 마" 소리를 날리고는 실없이 웃으며 책을 본다. 웃는 아들에게 빙구처럼 동참하고 절약에 끝판왕은 에어컨을 끄지도 못하고 말없이 문을 닫고 좋아했다. 마치 나는 내가 마음에 양식을 잔뜩 집에 넣은 듯 배가 터질 기세이다. 그 아들은 결혼을 했다. 그때의 에어컨은 거실에서 오래된 친구처럼 20년 동안 여름이 되면 나의 땀을 식혀준다.


 대문이 열리면 딸아이가 이마의 잔머리와 긴 머리 휘날리며 "엄마"를 부른다. 공부하다 주말이면 내 곁으로 온다. 열리는 문과 함께 가슴에 안고 들어오는 책 뭉텅이를 건넨다. 오던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틀 보고 갈 책들을 열 권 가량 빌려온다. 한 권이나 읽어낼까? 피곤해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책과 널브러진 풍성한 머리카락은 늘 곱다. 빌려온 책들이 도서관으로 다시 갈 때는 나랑 같이 간다. 어쩌면 딸아이에 이런 반복적인 행동이 나를 책과 만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자식 키우느라 핑계처럼 책과는 거리가 멀었고, 자식이 읽고 있는 모습에 배가 불렀기에 도서관은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Z세대에 빠른 호흡들은 나로서는 힘들다. 헐떡이며 기어가는 거북이처럼 걷다가 다시 되돌아 가고 싶어 진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저만치 뒤처져 바라만 봐야 하는 기분은 더 별로다. 쫓아가려는 몸부림으로 딸이 빌려온 책들을 쳐다본다. 손에 잡힌 책을 아무 쪽이나 한 줄 읽으려면 감기약 먹은 듯 병든 닭처럼 졸기 시작한다. 낭패다. "엄마 책 반납해" 딸에게 문자가 온다. 한두 권이나 빌려오지 에코백에 10권을 담아 낑낑 어깨에 메고 간다. 도서관은 조용하다. 신간 쪽에 머무르니 형형색색 표지들과 제목들이 작명가가 지은 것처럼 기가 막히다. 표지의 색깔도 보며, 제목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호흡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남학생이 집중하고 책을 본다. 예쁘다. 딸아이 "엄마" 부르는 소리에 "휴"하며 받던 책들이 수레바퀴처럼 한 바퀴 돌아서 이제 나보고 읽으라 한다. 세월이 이처럼 지난 뒤에 말이다. 자식이 먹은 마음에 양식만 쳐다보지 말고, 스스로 마음에 양식을 먹어보라고. 


2019년 10월 31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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