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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8. 2019

배움 2

K 작가와 글쓰기

     

     

내가 사는 작은 도시 길가에 작고 낮은 단층 가게가 있다. 하얀 커튼이 양 갈래 머리처럼 쳐져 있고, 빼꼼히 들여다봐야 무엇을 파는 곳인가 알 수 있다. 고개 들어 간판을 보니 '소규모 상점'이라 적혀있다. 유리문 손잡이를 잡으니 문에 달려 있는 풍경이 내가 들어감을 알려주고 두 계단 내려가니 손으로 만든 소품들이 앉아있다. 주인장이 핸드폰을 보다가 나를 쳐다본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명신 씨는 나이는 육순,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소녀 같고 순수하며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한다. 동네 예쁘장한 가게들은 모르는 곳이 없다, 걸어오며 웃는 목선에 걸쳐진 목걸이도 예쁘지만 손에 낀 은반지가 예쁘다 "어머 예뻐요" 우리는 이러고 논다. 서로 예쁘다고 칭찬하며 누가 들으면 가당치 않는 얘기를 서슴없이 지껄이며 소녀도 아닌 것이 소녀가 되어서  잠깐씩 떠들고서야 정신을 차린다."이거 소규모 상점에서 샀어요"  돌아다니지 않는 나에게 자세한 위치를 알려주며 그곳에 주인장이 작가란다.


'가족의 시골'이라는 책 한 권과  금방 동생이 짠 국산 참기름이라며 특이한 은반지를 낀 손으로 건넨다. 표지의 흑백 사진 속  짧게 머리를 묶은 작가의 딸내미 옆모습이 보인다. 시골 풍경의 사진들과 단문들로 쓰인 글들이  편안한 호흡으로 읽힌다.  한 장씩 넘기며  내가 살고 있는 곳이기에 사진들이 더 예뻐 보인다.  그런데 유독 긴 호흡이 느껴지는 문장에서 멈춰 선다.


"자본주의 아우라에 서로 한 꺼풀 쒼채 사랑했구나,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은 환경과 부피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었다. 아무 양념 없이 그를 그로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처절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멈춰 선 이곳은 금세 지옥이 된다는 걸, 깨닫게 했다"(p134)


그러게

읽던 책을 배 위에 얹고 천장을 바라본다. 지뢰밭인 줄 모르고 풀밭처럼 세상을 뛰어놀며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했다. 그런 내가 싫었던 것은 그 어리석음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실감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먼저 알았던 주위의 시선들이 나를 보고 얼마나 비웃었을까 하는  타인의 감정과 반응에 몸부림쳤다는 사실이다.

퍽퍽한 닭 가슴살을 평생 먹을 수 있을 거라 장담했지만 먹어보니 양념은 필요했고, 쨍쨍한 해변에 파라솔 없이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비키니 수영복 차림은  벗겨진 속살을 마주하고야  돌아올 응징을 알았다.  내 살갗 걱정보다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 사랑이고 머시 깽이고  한여름 매미처럼  나는 자식들 옆에서 맴맴 울었다.


한 커플도 아닌  두 커플 뒤집어쓰고 무언가엔가 홀린 듯  60년을 넘게 살아간다. 환불할 수도 없는 사연들을  예의 바른 척 잘고 숨기며 말이다. 내 사연을 들어낼 이유도 사연이 아니라 말할 이유도 없지만  소규모 상점에서 글을 쓰는 시간은 내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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