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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9. 2019

인연2

아련한 K 군



k 군은  내가 사는 곳을 시내라 부른다. 극장도 있고, 땡땡 마트도 두 곳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르는 k 군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음악을 틀고 망상 속으로 빠진다. 아직 추수하지 않은 누런 벼들이 햇살을 받아 막스마라의 고급 페팅을 능가하는 색깔이다. 햇살 좋은 오후에 이곳으로 가는 길은 운전석 왼쪽 빰에 올라오는 잡티를 이길 만큼 좋았다. 


 30분쯤 막힘없이 도착한 이곳은 경상북도 동쪽 끝자락에 깊숙이 앉아있고, 망상이란 선글라스 벗고 나면 소박하고 호젓한 시골의 2층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앞에 삼손 슬리퍼가 몇 개가 들쭉날쭉 널브러져 있다. 한편에 신발을 벗으며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긴장을 한다. 이 순간이 낯가림이 심한 나는 항상 내가 하는 일에 갈등을 일으키는 순간이다. 한번 방귀를 트면 편안해지듯이  왜 이리 트기까지 초면이 힘든지 모르겠다. 나는 상담을 하러 이곳에 왔다.


 K 군의 여드름 몇 개가 홍조와 함께 귀엽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이 피하듯 나가준다. 뭐라 하는지  자기들끼리의 은어가 생소했다. 굳이 알라고 하면 힘들어진다. 기숙형 방에는 남자아이들 냄새가 난다. 아들을 키워본 나는 이 냄새에 익숙하다, 머리 깜아라, 씻어라 노래를 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냄새를 말도 안 되는 향기라 추억한다. 그 아이들만에  뿜어내는' 젊음이라는 이름의 향수'를 얼마든지 맡을 수 있다.  K 군에게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 1분이 10분 같은 초면 만남에 K 군을 스캔을 뜨며 나는 K 군과 같은 고등학생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곳은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을 보호해주는 기관이다. 여학생은 1층 남학생은 2층에 살고 있다. 정확한 인원을 모르겠지만 웅성대는 소리 속에 k 군을 만나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누구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이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사연은 분명 대하소설만큼 이겠고, 눈물이 마를 만큼의 시간들이 흘렸지만, 슬픔, 괴로움 외로움은 절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독 눈에 띄게 밥을 안 먹고 말 수가 적어지는 k 군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관리 샘들은 걱정을 했고 상담을 신청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없던 고민이 K 군에게 분명히 생긴 거다. 초면에 속마음을 드러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나는 K 군 앞에 도구 하나를 꺼냈다. 주위를 환기시키며 놀자고. 고리타분한 설교나 위로는 징그럽게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놀아주고 싶었다. 타로 카드를 펼쳤다.


소드 3번 카드

















 k 군은 몸을 앞으로 당기며 한 장을 뽑는다. K 군이 뽑은 카드는 소드 3번이다. 이 카드는 심장에 비수를 꽃인 것처럼 가슴이 아픈 것. 흔히 사랑에 상처를 받았을 때 나온다. '어이구 깜짝이야!'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K 군을 암시해준다. 주위 샘들이 생각했던 가정문제일 거라는 추측에 빗나간 카드가 K 군 손에 전기를 타고 뽑혀나 왔다. k 군에게는 다른 감정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이성을 향하는 호르몬이 K 군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사랑에 감정을 끙끙 몸살처럼 혹독하게 아닌척하며 앓고 있었다. 그러니 밥도 안 먹고 말 수는 적어 들고 밤낮으로 누워있었던 거다. 더욱 이곳은 같이 생활하는 모두가 친가족이라 생각해야 하며 이성 만남은 금물로 규칙에 정해놓았다. 그러니 사랑도 할 수 없고 그 사랑은 더 아플 수밖에 없었다. K 군은 슬쩍 꺼냈던 내 사랑 이야기에 호기심의 눈빛으로 빛났다. 1시간이 흘렸다. 애를 써서 그런지 나는 코에서 더운 바람이 나왔다. 


 현관문 앞까지 배웅해주는 K 군 옆으로 슬쩍 지나가는 키 작은 누나가 신발은 신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 사이에  뿜어냈던 기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이 누나 와하는구나' 짐작해했다. 사랑이란 못하게 하면 더하고 싶고, 말리면  죽을 둥 살 둥 더 끌린다. 또 헤어지려고 노력하면 온통 애잔한 추억거리가 온몸을 휘감아 도통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 고약한 사랑이 찾아온 k 군에게 자신만의 소중한 사랑에 초를 칠 수도 없고, 부채질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의 풋사랑의 기억을 찾아 은근슬쩍 옆구리 찔러 사랑이는 것을 전달해 보았다. 그리고  10번을 만나고 헤어졌다.


 남몰래 해야 하는 사랑에 빠진 k 군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냐마는 그 저 한 겨울 감기인 줄 알았더니 독한 독감이 찾아온 것  같이  한바탕 심하게 앓고 지나가길 간절히 소망했고 빌었다. 너무 아팠을 것이다. 빼도 박도 못 한 사랑이. 그리고 K 군이 생각나는 지금. 부디 멋진 성인이 되었기를.




2019년 11월 09일 너무 청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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