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변호
아버지가 보고 싶다
보고 싶은 아버지는
두 가지 특색이 몸에 배어있었다.
한 가지는
어색하실 때마다"에~또"라는
추임새를 쓰는 바람에
본인은 웃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간혹 뒤돌아 웃었고
가족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또 한 가지는
뜨끈한 믹스커피를 마실 때
나는 소리였는데
커피잔이 입술에 다다르면
마시기 전에 마치 '후루룩'소리처럼
입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소리를 내셨다.
순수하셨던 아버지는
70세를 넘기지 못하고
69세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내 나이 31세쯤일 거다
막내인 나는 어려서 이 말 저 말할
군번이 아니었지만
머리가 굵어진 오빠 언니들은
아버지의 "에~또"와 '후루룩'소리에
그만하시라 목소리 높였고
아버지는 전전 긍긍하면서도
어김없이 말 앞에는"에~또"를 쓰셨다
"에~또"는 답답했고,
'후루룩'소리는 지저분하고
점잖지 않은 소리로 느껴졌다.
큰언니 상견례 날이었을 거다
내 나이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엄마는 대문 앞에 서서 흰색 장갑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꼭 맞게 끼시며
고운 한복 차려입으셨다.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며
"에~또 좀 빼고 커피 먹을 때 알지요?"라고.
하지만 긴장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작은 키에 통통한 얼굴,
배둘레가 상당히 넓어 그 시대 인격과 비례한다면
높은 인격에 소유자셨다
엄마는 막내딸인 나를 데리고
서대문 영천시장을 자주 가셨는데
사이즈가 큰 허리띠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가게 저가게로 들어가 물어봐야 했다.
"벨트 큰 거 있어요?"라고.
세월이 흘러서 내가 결혼하던 날
흰머리 휘날리니 주례를 보시냐고
인사를 받으셨고
멋진 쌍꺼풀과 숱 많은 눈썹은 그대로였으나
한쪽눈은 아쉽게도 백내장 수술용 안경으로
눈동자가 커져 보여 인물에 마이너스가 되었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
캔터키치킨이 한국에 들어왔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가게 앞에
통통하고 귀여운 켄터키 할아버지 한분에 서 계셨다
포근했던 아버지와 너무 닮아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고
다음에는 치킨을 사지 않더라고
켄터키 할아버지의 어깨와 다리를 슬쩍슬쩍 만지고 왔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켄터키 치킨가게는
꽤 오래 있었는데 섭섭하게도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에~또"라는 추임새로 말을 끌며
상대방을 이해하셨고,
"후루룩" 소리는
뜨끈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달달한 믹스커피를 타주시던
엄마에게 맛나게 타줘서
고맙고 좋다는 인사의 소리였다
고쳐지기 힘들었던 아버지의 습관으로
가족은 웃기도 하고 가부장적인 그 시대에
아버지에게 들이댈 수 있었던 자식들의
무기이기도 했다.
"아버지
나도 자식과 남편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한 번씩 써먹을까 합니다
써먹을 일이 많거든요
쓸 생각을 하니 웃음이 먼저 나옵니다"
2024년 12월 28일 토요일
바람이 많이 붑니다
아버지 나이가 되고 나서야
막내딸이 아버지를 변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