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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Aug 08. 2020

알아차림 13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 


낙동강 강변에는 키 작은 토끼풀들이 비가 오고 나면 키가 쑥 커있다. 세 잎사귀를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장맛비를 견디어 낸다. 잠깐 멈춘 빗줄기는 방울이 되어 동글한 모양으로 잎사귀마다 앉아있다. 무겁지 않을까 쪼그리고 쳐다보니 큰 개미 두 마리가 분주하게 왔다 갔다 신이 났고 잠시 머문 실잠자리의 야광 빛 꼬리가 너무 예쁘다. 초록의 토끼풀에  침침해진 눈이 밝아졌는지  벌레가 갉아먹은 네 잎 클로버가 보인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 왼손 엄지와 검지에 꼭 쥐고 하얀 밥풀처럼 피어 있는 개망초에게 보여주며 뜻 모를 콧노래와 비에 젖은 운동화는 실내화 신은 듯 가볍기가 그지없다. 이렇게 살고 싶었다.


나답게 살아라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타인에게 맞추어 살던 부모님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 말씀하시듯 나에게 대물림해 주시고 소천하셨다. 변덕 떠는 친구들과 잘 지내야 했고 결혼과 함께 시댁은 찍소리도 못하고 따라야 하는 군대 같았다. "이게 아닌데"라는 마음이 올라와도 멀쩡한 얼굴이 구겨지고 탁해져도 58년생 개띠의 시대는 이렇게 살아야 되는 줄 알았다. 생선 중에 조기를 좋아했지만 시댁이 좋아하는 고등어를 열심히 굽고 있었고, 멋깨나 부리던 아가씨는 몸빼 바지에 싱크대에 서서 물 말아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내가 누군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월은 흘러 내 몸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가족의 일부분이 되어 살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으니 눈꺼풀이 짓누르는다. 눈을 반쯤 감고 어구 어구 소리를 내며 만보 걸으러 나간다. 컴컴한 하늘과 구름 속 달을 보며 또렷해지는 지난 시간이 비굴하고 당당하게 살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진다. 그러려니 하다가도 추억이 건드려지면 휘리릭 바람 빗자루 타고 과거로 날아가 후회와 원망하기를 반복했다. 강물처럼 흘러가기를 기대하며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본다. 핸드폰 꺼내 들고 오디오북에서 들려주는 데미안을 누른다."내 속에 솟아 나오려는 것.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첫 구절에 눈을 치켜뜨고 다시 듣는다. 치켜뜬 눈에 눈물이 고인다.  맞아. 솟아오르는 것을 누르고 타협하며 살아왔던 거지. 이것이 맘에 안 들어 늘 힘들었던 거고.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며 싫다 좋다 명확히 하지 못한 것들이 쌓이니 사는 것이 힘들어 절절매며 내가 맘에 안 들어 죽을 지경이었던 거다.   학습된 배려와 어색한 미소는 결국 나에게 독이 되었다. 


나답게를 시작해본다.

1.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을 후벼 팠던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왜 그러셨냐고. 그가 기억을 하던 못하던 관계없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족하다.

2. 내 촉을 믿는다. 친구 따라 남편 따라 강남 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내 마음 가는 데로 행동해본다. 예를 들어 마트 직원이 골라준 수박보다는 수박 배꼽도 보고 두드려보며 내가 선택한다.

3. 거절을 연습한다. 내 기준에 어긋나는 부탁은 단호히 싫다고 말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은 없다. 이건 모두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나를 용서해 준다. 살기 위해 솟아오르는 것들을 억누른 나를 향해 잘 견뎠다고 잘 살았다고 얘기해 준다.

5. 남편과 자식들에게 따질 것은 따지고 두리뭉실 넘어간 일들을 정리한다. 풀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마음속 찌꺼기를 버리고 가벼워져야 한다.

6. 남에게 잘 보이려고  땡칠이처럼 웃는 일을 멈춘다. 

7. 글을 쓰듯이 또박또박 말하며 간결하게  대답한다. 대답하기 싫을 때는 억지로 말하지 않는다.


글을 쓰며 나를 만나고 걸으며 나를 만난다. 가족과 타인에 치여서 온데간데 없어진 내 흔적을 찾으며  내 속에서 솟아 나오는 대로  나답게 살아보려 한다. 오늘 해보고 내일 또 해보며 살아간다면 먼 훗날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데미안에게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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