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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Apr 11. 2021

사주 공부 1

내가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겠는가

 휴대전화에서 언니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뭐 하니?" 하길래  사주 공부한다고 했다. 일초에 망설임 없이 그런 거 뭐하러 하냐고 야단이다.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통화가 마칠 무렵  생년월일 물어보니  마치 철학관 모드로 바뀌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소여물 주기 전, 새벽녘에 태어났다며 정확하지 않은 시간까지 자세히 설명한다. 며칠 뒤 언니는 왜 답이 없냐고 또 야단이다. 언니의 야단 범석 같은 마음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했으며,  동생에게 아니 타인에게  살아온 세월은 위로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지나간 삶은 "잘 살았어요"라고 듣고 싶고 미래의 시간들은 "좋아요"라는 소리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나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유난히 전화벨 소리가 울려대는 날이 있다. 오래된 인연들이 짜고 전화하는 것처럼 연달아 온다.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40년쯤 된 인연으로  대학 동창생 민자는 경상북도 풍기에 살고 있다. 동창생이지만  대학을 늦게 들어간 나에게  "언니 잘 있었어?" 하고 씩씩하게 불러준다. 교사가 되고자 했던 꿈은 기간제 교사로 만족하며 지금은 인삼도 팔고 천연 염색도 하며 때로는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식당에서 주방 일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울음 섞인 민자는 자식에게 물질적으로 해주진 못한 죄로 사망보험을 들어놓았다 하면서 폭풍 오열한다.


30년 된 인연, 민아 엄마는 내가 둘째 딸을 낳고 많이 부었을 때 호박죽을 한 들통 끓여준 고마운 이웃이다. 같은 빌라에 살면서 나보다는 어렸지만 어찌 그리도 살림을 깔끔하게 잘하며  바지런하던지,  싱크대 하수도 구멍 밑마저 깨끗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보기 드문 살림꾼이다. 고운 목소리로 서울 집값이 올라서 걱정을 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러다가 뒤로 갈수록 며느리의 황당한 모습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속마음이 전화기를 통해 전달된다.


10년 된 인연, 살살 웃는 웃음이 주 특기이며, 실수 투성이 민들이 엄마. 말도 안 되는 오해로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모두 바람 잘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멀리서 보면 편안할 것이라 믿었던 이웃들은 한두 마디 섞다 보면 늪에 빠져 '허덕허덕'하는 모습이다. 구해줘야 할 위험군이다.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이들은 조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신세한탄 속에 위로받기를 원하는 것이고, 답은 이미 그들이 알고 있으며, 전화를 끊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져서 그들답게 살아갈 것이다.


각자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 사주팔자 같다. 같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그렇다. 여기에  자라온 환경과 부모의 영향,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서 운이라는 단어와 딱 만나면 숙명 같은 팔자는 바뀔 수도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지금, 자신의 사주 오행을 공부해보면 어떨까. 내가 나를 아는 것  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막연히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공부다. 50세가 돼서야 실눈을 뜨고 나를 보았고, 60세에 반쯤 눈을 뜨고 머리 숙여  나를 보았으니 아쉬움이 마음속에 꽉 차있다.  아쉬움과 후회가 현실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도 해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내 색깔을 찾아서 어울리는 옷을 입고, 부족한 것을 채워가려 사주 공부는 진행 중이다.




2021년 4월 11일 일요일 봄이다.

동네 가파른 언덕 위에 오래된 철학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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