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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Apr 14. 2021

알아차림 13

감사 불씨가 꺼지면 후회가 자리 잡는다.

이놈의 후회는 하지 않은 날이 없다. 감사하는 것들을  말해보라 하면 "음"하면서 한참을 생각한다. 후회하는 것을 찾아보라면 단숨에 따발총같이 튕겨 나온다. 문밖에 나가 몇 걸음만 걸으면 쓰레기 수거함이 곳곳에 있지만 후회는 하루 종일 걸어도 버릴 곳이 마땅히 없다. 그러니 가슴에 차곡차곡 묻어둘 뿐이다.


서울 집값이 오르니 급하게 팔아버렸던 사당동 산꼭대기 아파트가 일 년을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닥으로 떨어진 주식이 신경 쓰기 싫어 내쳐버렸더니 상한가를 친다.'참노라 참아라' 꾹꾹 입 다물고 대꾸 못했던 시댁 식구들과의 대화 내용들은 시간이 흐르면 잊히겠지 했건만, 더 생생하게 떠올라 믹스커피만 축낸다.


 매일 이렇게 요동치는 마음과 씨름한다. 스스로 묶어버린 후회와 원망의 족쇄는 측량할 수없으니 그 무게는 각기 다르다. 제주도에 가면 동글동글한 뜸돌이 있다. 어찌 들어야 할지 속수무책인 이 돌은 허리 굽혀 용만 쓰다가 들어보지도 못하고 지쳐버린다. 후회와 원망의 돌덩어리가 이 돌만큼일까. 그럭저럭 지내다가도 감사함의 불씨가 꺼지는 날이면 후회와 원망이 활활 불타오른다.  

 

큰아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스승의 날 일일 교사로 간 적이 있다. 한 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하루 전날  "감사 아줌마와 불평 아저씨"라는 글을 지어냈다.  아이들이 집중하길래 솔방울에 맞아 투덜 되며 불평하는 아저씨는 넘어지고 자빠트려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붉어진 얼굴로 만들어 흉내냈고, 작은 솔방울이 머리 위에 떨어진 아줌마는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호호호" 웃는 호호 아줌마로 만들었다. 좋게 얘기하면 창작 동화이다. 이때도 마음은 여전히 힘든 시절이었다. 작은 감시함이라도 찾아보려 애를 쓰며 살고 있었을 거다. 뜬금없이 이런 뻥치는 이야기기가 나왔겠는가. 어리고 젊었지만 딱하기 그지없었던 젊은 새댁이었다

지금은 이 이야기에 조금 살을 붙여 창작동화 한 편을 써볼까 생각하면서 웃는다. 28년 전 교실에 앉아있었던 아들은 장가 갈때 물어보니 기억하고 있었다.


잠들기 전에 누워서 보는 휴대폰은 하루를 마감하는 사은품이다.  드라마 빈센조 짤방에서 귀에 쏙 들어오는 대사가 있다. 여자 변호사가  남자 주인공에게 "후회는 살아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후회하지 말고 원망의 대상인 엄마를 만나보라는 거다.  거불대는 눈으로 천정 쳐다보며 가고 싶지 않은 지옥 장면을 떠올려본다. 마음이 지옥이었다고?!.그 많은 후회가 지옥이었다면 감사함으로 살았던 시간들은 천국이었다. 간사하게도 그저 평범하기만 바람 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깜박깜박 잊고 산다. 폰을 가슴에 얹고 크게 호흡하며 눈을 꾹 감는다. 내일은 소천국에서  살아보기로.

  

2021년 4월 14일 수요일.

새싹들이 올라온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초록을 선물한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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