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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y 27. 2021

걷기 4

 걸으며 글을 쓴다


점심밥을 먹고 믹스커피 한 잔 컴퓨터 옆에 놓고서는 창쪽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간다. 오후 들어서 화창해진 날씨가 글을 쓰려고 앉아있는 엉덩이도 들썩이게 한다. 매 순간 이렇게 갈등을 하면서 산다. "오키! 나가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한 장을 운동복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양산과 마스크를 챙기며 누군가와 약속시간에 늦은 듯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운동화 뒤꿈치를 꺾어 신으며 문밖으로 나간다.


아카시아꽃들이 아스팔트 바닥을 하얀 꽃길로 만들었고, 향기 또한 마스크 속으로 솔솔 들어온다. 올해 오월은 비가 많이 온다. 어제저녁 빗물을 실컷 먹은 풀들은 대충 10센티 키가 커있고, 금계국과 계 망초는 웃음이 나올 만큼 넓게 퍼져있다. 군데군데 토끼풀들이 납작하게 올라왔다. 어리고 여린 잎들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작년 여름에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다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이 온 것이다. 여전히 이름 모를 벌레들이 잎들 사이로 움직인다. 그들도 반갑다.


이렇게 걸으러 나오면 글을 쓰는 것은 물 건너갔다. 검은색 티셔츠 등짝으로 쏙쏙 스며드는 햇살이 따스하다. 언제 글을 쓰니? 스스로에게 물으며 "쓰고 있잖아 마음으로".라고 답한다.


작은 공원에서는 손뼉 치며 운동하는 소리가 "딱딱"들린다. 이왕이면 나무가 많은 쪽으로 걸으면서 챙겨 온 만 원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저녁 반찬으로 두부와 콩나물을 찜 해놓는다. 자질구레한 걱정들이 머릿속에서 꿈틀댄다. "별것 아니야 놓아버리자" 나보다 오랜 산 듯한 큰 나무의 거친 표면을 쓰다듬으며 나무에게 얘기한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지만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늘 고민하며 걷는다. 사는 것이 재미없다는 동네 아주머니 말에 술 한 잔과 화투를 잘 쳐야 인생이 재미있다는 목욕탕 주인 할머니의 명쾌한 해답이 농담처럼 던진 말을 아닌듯싶지만 나하고는 아주 먼 얘기임에는 분명하다. 술 한 잔과 동전 내기 화투 치기로 재미있게 사는 사람도 있고, 버스 옆자리에 옷에 베어있는 술 냄새만으로도 머리가 쑤셔오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머리로 글을 쓰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몸부림치는 일상을 즐기며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렇다.



2021년 5월 23일 일요일. 하염없이 걷고 싶었던 오후, 생각할 것들이 많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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