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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y 28. 2021

흰머리로 살아가기 6

염색에서 벗어남


이 년 전만 해도 머리 염색을 하고 나면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까만색 머리카락에 두피까지 적당히 검은 염색약이 묻어서 숱도 많아 보이고, 하루 이틀은 대만족이었다. 하지만 며칠을 못 버티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흰 머리카락이 왜 그리도 잘 보이는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앞머리카락에 염색하고 또 염색하고. 깔끔도 병이라 머리카락이 몽땅 빠질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두피가 벌게지고 없어진 머리카락에 가슴을 쓸어내리고서야 아차 싶었다.


전두엽을 많이 쓰고 살아서 그런지 앞머리가 휑하니 빠지더니 빠진 부분에서  머리카락이 올라온다. 올라오니 다행인데 여전히 소복하지는 않고 비어있던 부분은 메꾸어졌다. 흰머리로 선두주자에 나선 몇몇 연예인과 장관님 덕분에  갈등하며 흰머리를 기를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방바닥에서도 몇 가닥 보이지 않는다. 손질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동네 어르신 머리 모양이 되었다. 겨울이 두 번 지나고 나니 흰머리는 단발머리 정도로 자라 있고, 앞머리는 거의 백발이며 뒷머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많다. 앞머리가 많이 빠져 어쩔 수 없이 염색을 멈추었을 당시에는 "빠진 머리카락만 난다면" 하는 바람으로 빵떡모자 눌러쓰고 겨울을 보냈고, 모자를 벗으면 한 소리씩 하는 소리에 '너희들이 내 맘을 알아?" 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침을 꼴깍 삼키고 참았다. 손질을 해도 눈에 띄는 흰머리와 염색 모의 경계선이 어찌나 보기 싫던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지만 견딘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니 모자를 벗고 싶었고, 더운 여름에는 챙이 작은 밀짚모자를 외출할 때 사용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살다 보니 동네 참기름 방에서는 칠순 팔순 되신 형님들과 함께 젊은 주인장이 불러주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검은 염색을 할 때보다는 흰머리가 눈에 잘 띄어서, 염색하고 살아가는 내 나이와 비슷한 분들이 유심히 나를 살핀다. 똑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지겹고 귀찮은 염색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은.



올해 환갑 나이에 소품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은 장사를 하려니 흰머리를 하고 싶어도 손님맞이하는 일이라서 너무 나이가 들어 보여 손님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봐 염색을 한다고 한다. 간호조무사 일을 하는 친구도 마찬가지다. 몸이 많이 아픈 동창생은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데 병원 가기 전날은 꼭 염색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아픈 데다가 외모조차 너무 초라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습관처럼 해온 염색을 멈추기는 쉽지 않다. 별 탈 없이 염색을 해도 잘 견디는 두피라면 굳이 흰머리를 고집할 일은 아닌듯하다. 흰머리가 결코 젊어 보이고 멋져 보이며 생기가 넘쳐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름마다 해야 하는 염색 스트레스에서는 벗어났지만 거울 속 흰 머리카락이 되어버린 내 모습이 가끔은 너무 늙어 보이기도 한다. 나름 흰머리에 어울리는 옷과 액세서리를 찾아가며 스스로 위로해 준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 어쩌냐고 말이다.


머리카락 끝부분만 파마를 했더니 끝부분 흰 머리카락이 까슬까슬하다. 흰 머리카락이라서 파마가 잘 안 나온다는 미용실 주인장 말이 왠지 노여워지는 노인이 됐다. 그래도 열심히 에센스를 듬뿍 바르고, 웨이브로 굽실굽실하게 하고 나면 그레이 빛 머리카락에 풍성함과 자연스러움이 새까만 염색 모보다는 고급 져 보이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흰 머리카락으로 살아가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까만 머리카락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흰 머리카락으로도 살아볼 기회가 왔지 않은가!. 가끔 죽을 때까지 염색해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힘없고 아플 때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면 딸 남편 그리고 며느리를 떠올리며 눈가가 붉어졌었다. 걱정도 팔자에 있나보다. 이제 이 고민에서는 해방이다. 단지 언제까지 잘 손질하여 실버 모델은 아니어도 늙어감에 상징은 흰 머리카락이 멋있게 보이도록 안과 밖 모두 어른답게 살아가기를 노력할 뿐이다.



2021년 5월 28일 흰머리로 살아가기 18개월째.

아침에는 흐리고 쌀쌀. 낮에는 천둥과 바람과 비, 오후 4시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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