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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Jul 28. 2021

알아차림 15

상처 받은말들은 어떡하냐고.


딸아이 전화 속 목소리만 들어도 감정이 전달된다. 수다 떨기에 딱 좋은 친구가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8년 터울의 오빠와 차이가 많이 나서 딸아이를 볼 때마다 "언제 크나" 하고 속으로 읊조렸다. 그 아이가 30살이 되려고 한다. 20대의 막차를 타고 있는 딸아이는 지겹게 공부하면서 연애도 하고 싶겠고 가끔씩 부딪히는 친구와 인간관계 속에서 울고 짜며 야단법석 같은 마음은 여느 20대와 똑같다. 누구는 죽어라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젊어서 연애 안 하면 언제 하냐고 옆구리 찌르고,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무단히 전화를 걸어와서 지금 모습이 변했으니 달라졌느니 상처 주는 말들을 툭툭 내뱉기도 한다. 어떤 시절인들 힘들지 않겠냐마는 고민도 많고 탈도 많은 20대 시절은 금덩어리를 불에 달구고 두들겨서 보석을 만드는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아프고 힘든 만큼 성장도 하려고 애를 써봐야 한다.


 되돌 일 수 없는 시계가 보인다. 뱉어낸 말들과 들었던 말들은 각자의 분량만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어제도 다 늙은 동창들은 40년 50년 전 시간 속으로 휙 날아가서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곰탕처럼 재탕 삼탕 한 얘기를 또 한다. 좋은 얘기도 지루한데 듣고 싶지 않은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으련만 웃어가며 놀려 먹는 재미에 받아주기라도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나불댄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흔들이고 엉겁결에 착한 아이가 되어버려 살아온 시간들이 세상 제일 아쉽다. 그리고 미쳐 버릴 만큼 속상한 것은 누군가가 내게 뱉어낸 말들에 대해서 대꾸를 못 했던 거다. 처음에는 당황을 해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무시한다고 참았던 것이 나에게는 멍이 되어 온몸에 군데군데 어혈로 남아있다. 이것은 우울하려고 맘만 먹으면 시퍼렇게 피부로 올라와 마치 상처투성이로 살아온 모습으로 확대되어 나를 짓 눌렸다.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여전히 내 곁에서 때때로 출몰한다.


딸아이에게 말했다. 상처 준 아이를 만나라고.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기억 못 해도 얘기하라고. 그리고 오늘도 상처 받은 말이 있으면 쫓아가서 따져보라고. 참으면 참을수록 말한 아이는 모를 수 있으며, 받아주기 시작하면 간을 본 아이들은 너를 그런 식으로 상대할 거라고.


스스로 상처 주지 않고 배려하고 산다면 최소한 본인도 방어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 64살이 되었지만 매일 연습도 하고 실천하면서 살아간다. 못 냄이 가 아니라 모질지 못하게 생겨버린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에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숙제다. 유전인자는 딸아이까지 힘들게 한다.


돌아가신 엄마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양보하며 착하게 살라 당부하셨지만 느지막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딸에게는 친구와 어울려 떠드는 시간보다도 홀로 사는 즐거움도 있으며, 고만 고만한 나이에 고민을 얘기 하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내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네가 정답이고 너보다 현명하고 똑똑한 아이는 없다고. 상처는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고 살아가라고. 그리고 입으로 짓는 악업보다는 베풀 수 있는 보시를 하라고.



2021년 7월 28일 화끈한 여름이다.


가까스로 외면하고픈 상처가 떠올라 얼음 수북한 냉커피를 마신다.

마음속 상처가 자꾸 떠오른다면 상처 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서 얘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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