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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19. 2021

가을 8

아름다웠다.고운사의 가을은.


지방의 중소도시는 늘 한적하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더하다. 해가지고 가로등 불빛 밑으로 떨어지는 낙엽이 쌓이면 쌓일수록 쓸쓸함도 도시와는 다르다. 더욱 찐한 가을을 원한다면 차로 20분에서 30분 정도, 면 단위로 들어가면 된다.  한 바닥 깔려 있는 낙엽과 빨리 내리는 어둠 덕에 하늘 가득 꽉 차있는 별들을 초 저녁에 볼 수 있다. 바스락대는 낙엽 소리에 발바닥을 질질 끌어본다. 천천히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잡아보려 애를 쓰지만 잘 잡히지는 않는다. 손아귀에 잡힐 것 같았던 인생사와 비슷하다. 낙엽 한 장이 쫙 펼친 손바닥 위로 살포시 내려앉기를 기대하며, 시커메진 마음을 회색으로 중화시켜보려고 키가 큰 나무를 두 팔 벌려 감싸 안았다.

일요일 따뜻한 날씨는 월요일 비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김밥을 파는 분식집에 들러서 "햄을 빼고 싸주세요"라고 주문하고, 찜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토실한 팥 찐빵에 눈이 간다. 보온병에는 커피 믹스를 진하고 준비했고, 보온 가방에 김밥과 찐빵을 담아 양쪽 어깨에 둘러매고 가을을 만나러 간다.


2차선 도로에서 우회전하면 산 쪽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어이구 깊다 깊어" 감탄사를 몇 차례 하게 된다. 길가에는 사과 수확이 한창이라서 한 봉지에는 만 원, 큰 바구니에는 2만 5천 원이라고 두꺼운 박스 종이에 검은색 펜으로 써서 사과 위에 놓여있다. 주인은 집에 계신 모양이다. 이 깊은 산속에 어찌 절을 지었을까 매번 궁금하다. 깊은 만큼 4계절을 뚜렷하다. 밝고 맑은 봄의 빛깔도 강렬한 여름의 햇볕도 다르다. 크기와 색깔이 다른 낙엽이 가득한 가을, 5도 정도 낮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 있다.

낮고 작은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시는 스님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휘리릭 지나가신다. 스치는 바람이 아직은 차갑지 않다.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곳에는 털신 두 켤레가 놓여있고, 빗자루와 땔감나무들이 이곳저곳에 보인다. 새벽녘의 온도는 한 겨울처럼 냉랭하겠지. 편한 함과 한가함을 구하려 수행자가 되신 것은 아닐지니 우리들이 밟은 수북한 낙엽은 쓸어야 하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이른 새벽에 목탁을 잡으실 게다.


온통 자연만 존재하고 드문드문  절이 있는 이곳은 조용하다. 극락전 옆으로 처마 밑에 의자가 놓여있다. 작게 피여 있는 노란색 들 풀을 보며 김밥 한 개를 꼭꼭 씹어먹으니 원두도 아니고 좋은 카페도 아닌 곳에서 식지 않은 커피믹스 향이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코 평수를 넓히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중생이다.

불상 앞에 어설프게 머리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절절한 마음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 편해졌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걷다가 다른 이들을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계단 옆에 숨어있는 큰 빗자루로 쌓여있는 낙엽을 "쓱쓱"쓸어본다. 계단 위로 오르던 중년 남성이 너무 깨끗이 쓸어버리면 가을 멋이 없다며 말을 건넨다. 그렇기도 하겠다 싶어서 조금은 남겨두고 걷지 않은 쪽으로 낙엽을 몰아넣었다.


가을이 가을 다우니 아름답다. 큰 나무처럼 먹어버린 나이건만 아직도 나다움에 자유롭지 못하다. 깊은 산 곳에 끄떡없이 앉아있는 고운사처럼 돌풍 같은 세상살이에 호들 갑 떨지 말고 눈썹 정도만 흔들리며 거침없이 낙엽을 밟듯이 살아갔으면.



2021년 11월 07일 일요일. 노랗고 누런 빛깔에 떨어지고 뒹구는 낙엽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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