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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04. 2021

가을 7

2021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오전 9시 30분쯤이면 우체국 택배 아저씨의 오토바이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우체국 근처에 살고 있어서 빠르게 우편물을 받아 볼 수 있다. 기분 좋게 받아본 우편물 사이에 주정차 위반 범칙금 고지서가 끼여 올 때가 있다. 한 사흘은 속상하다가 넘어간다. 10월 29일 금요일이다. 넒직한 누런 봉투를 우체부 아저씨가 내민다. 살살 봉투를 찢어보니 2022년 달력이 보인다. 일찍 만나는 2022년이라는 숫자는 막연한 설렘과 함께 잠시 멍하게 만들고, 고개를 돌려  달력을 쳐다보니 시월에 마지막 날이 오고 있다. 어찌 살았는지 모르게 열 달이 후딱 지나갔다. 뭘 했을까? 2021년에는.


10월 31일 일요일 낮이다. 따뜻함까지 더해진 초가을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하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10대들 긴팔 셔츠에 긴 바지를 차려입은 대학생들  패딩조끼를 허리춤에 묶어 입은 아이 엄마와 해가 질 때를 대비해서  운동복 바지에 겨울 잠바를 챙겨 입은 할아버지,  4계절 옷차림이 다 있다. 사람들은 강변을 따라 걸으며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핑크 뮬리 앞에서 번갈아 가면서 사진을 찍어준다. 찡그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닭 꼬치를 파는 푸드 트럭과 솜사탕을 기다리는 아이들, 푸근한 날씨에 놀라서 다시 올라온 토끼풀이 반갑기 그지없다. 네 잎 클로버 두 잎을 발견하고 숨죽여 좋아 죽는다.



젊어서는 도전적인 자유가 있다면 나이 들어 자유는 느긋함과 편안함이 있다. 남편과 둘이 간단히, 그리고 대충 살면 된다. 반찬 가짓수에 얽매이지 않는 밥상과 주말에는 걷고 싶다면 하루 종일 걷는다. 쉬며 걸으며 주전부리 즐거움도 있다. 발가락에 물집은 3만 보 정도 걸으면 생긴다. 많이 걸었다는 훈장이라서  저녁 잠자기 전에 바늘로 "똑" 따면 그대로 아문다.



올해 10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오래 걷는다. 살살 부는 바람에 손에 잡힐 듯 천천히 떨어지는 낙엽이 은행잎보다는 수북이 쌓여있고, 이용 가수의 잊혀진 계절을 트럼펫으로 들려주는 중년의 아저씨 덕분에 벤치에 앉아서 대가 없이 라이브 음악을 듣는다. 강물에 비친 강한 햇살을 마음에 담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찌릿한 행복감도 맛본다.



아쉬움이 있다면 해가 일찍 지는 . 중천에  있을 때는   같지 않더니만 서쪽으로 기울어 얼마를 머물지 못하고  너머로 들어가 버린다.  여기서 내가 보이는지. 붉은 노을이라도 오래 쳐다보며 2021 10마지막 날이 저문다.




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올해는 뭐하고 살았나 생각해 보니 무진장하고도 많이 걸었다. 두루두루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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