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허연 머리를 해요?"
"왜 허연 머리를 해요?" 참으로 듣기 싫고 못된 말본새이다. 흰머리를 하며 두 번 들었던 말인데 시간이 흘러도 생각나는 말투다. 대꾸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어쩌면 무반응으로 강하게 응징하는 주특기이기도 하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고 나면 잠잠해진다. 말은 골라서 섞는다.
안 빠질 것 같은 흰머리카락도 빠진다. 먹는 음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마음이든 몸이든 뭔가 기운이 달리면 더 빠진다. 머리카락에 어떤 가공을 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를 놔두면 좋을 거 같지만 그냥 놔두니 부스스하다. 똑 단발머리도 손질이 필요하다.
한 달에 한 번은 머리카락을 자른다. 한 달 정도면 깔끔함이 사라지고 어중간 지저분해 보인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사치다.
코로나 시대가 지나갔는데도 미장원은 예약제가 계속된다. 전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머리나 자를까 하면서 가던 곳인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딸아이 중학교 때 곱슬머리를 매직으로 잘 펴준 주인장에게 간다. 차분한 주인장에게 전화보다는 문자로 남기는데, 어깨에 석회가 끼어서 왼팔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답이 왔다. 미장원은 바꾸기 어려운 곳 중 하나다. 한주 두 주를 기다려본다.
조금 자란 머리카락에 에센스를 바르고 한두 번은 뜨거운 롤도 말아보고 드라이도 해본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뜨거운 자극을 덜 주려고 구르프를 말아준다. 쭉 뻗은 단발머리가 여름 철에는 시원해 보였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맘에 들지 않아 굽실굽실해보려 한다.
4년 전 12월 초 염색한 머리카락은 온대 간 데 없다. 아직도 몇몇 이들은 의아해하면서 흰 머리카락을 쳐다본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숱이 없는 이들도 염색을 계속한다. 빠진 곳을 감추려고 노력했던 4년 전 나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흰 머리카락을 하고자 하는 용기는 분명히 필요하다. 내 나이에도 10명에 1명 있을까 말 까다.
염색의 귀차니즘을 알기에 갈등은 없다. 어떤 좋은 염색제도 두피에 닿으면 자극적이고 젊은 두피도 아닌 것이 견디기 어려울 거다. 추운 겨울 차가운 염색약이 두피에 묻으면 느낌이 선뜩했지만 옷에 염색약이 묻을까 봐 조심 떨다가 감기도 자주 걸렸다.
흰 머리카락을 힐끔 보며 조금 더 나이 먹으면 흰머리 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모두 염색을 멈추면 백발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지 않다. 그레이 빛의 멋진 색깔을 기대해도 좋다. 왜냐면 내 경우 하얀 눈꽃 같은 백발일 줄 알았는데 꽤나 검은색이 존재한다.
젊은이들은 검은 머리카락을 탈색하고 7가지 무지개색으로 염색을 한다. 그러다가 흰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면 그제야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다. 검은 머리카락이 있을 때 피부처럼 만져주고 소중히 가꾸어 주자. 세월은 빠르게 흰 머리카락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뭐든 예방이 중요하다.
마음도 몸도 좋은 것으로 드시라. 털 많고 까만 머리카락만 믿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던 자가 여기 있다.
2023년 12월 02일 토요일
어제보다는 덜 춥다. 틈틈이 구르프를 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