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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29. 2019

배움 1

김치를 담그려다 영어에 발을 담근다



 아이 원 투, 아이 니드 투, 아이 해브 투. 그다음이 생각나지 않아서 "투투" 입을 동그랗게 만들어 부엌을 왔다 갔다 한다. 이제는 뻔뻔할 나이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에 발을 담그더니, 이제는 꿀을 잔뜩 담고 있던 입을 열려고 영어에 발을 담근다. 작년까지는 배추를 사고 절여서 김장을 했다. 올해는 좀 편해보려고 절임 배추를 주문했다. 언제 담글지 기약이 없다. 한정된 시간이라는 것이 입을 닫고 소모적인 일을 줄이면 사유의 공간이 생긴 줄 알았는데 까치소리를 듣고 눈을 뜨면 어느새 어두운 저녁이 되고 만다.


 나는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다. 농사 철이 지나면 중국의 장가계를 간다고 촌 어른들은 분주하다. 어디 가게 가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외국에 가고 싶은 갈망도 없다. 짐을 싸는 것도 싫고, 갔다 오면 빨래와 밀린 일들이 여행의 계획을 이긴다. 굳이 갔다 붙이자면 명절 때 시댁에 다녀오면 힘이 들었다. 마음도 몸도 회복하려면 체력과 성격이 오랜 시간이 지나야 회복된다. 어쨌든 외국 사람 구경은 내 나라에서 한다. 외국인 여행객도 보이고, 다문화가정도 내가 사는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외국인이 지나가면 말이라도 걸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모르는 채 한다. 지나치고 나면 영 못할 짓이요, 찝찝해서 죽을 맛이다. 영어를 모르는 것이 왜 이리도 불편한지 이 나이에도 자유롭지 않다. 결국 공부 안 한 내 잘못으로 돌리려니 이것도 죽을 맛이다.


 핑곗거리 하나를 데리고 온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 후 알파벳을 배웠다. 영어책을 그때 처음 만졌다. 내가 알기로는 선수 학습을 하고 들어오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잘 따라 했다. 재미있어야 할 영어가 주눅이 든 것은 다름 아닌 내 큰 오빠. 14살 많은 오라버니다. 내가 대여섯 살 때 연애를 하시고 잘 나가던 한양대학을 자퇴하신 분. 이분 영어를 묻는 막내에게 "이것도 몰라?" 하며 비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비웃음보다도 그냥 한 말이었는데 간신히 입을 열고 물어본 동생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오빠지만 사춘기 소녀 마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영어시간에는 꿀을 잔뜩 입에 물었고, 그 꿀은 오래도록 뱉어내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간다. 이렇게 되니 다른 과목으로 눈을 돌려 중국어 수학 등 재능도 없는 과목과 씨름하느라 골이 파이고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다.


 모르면 용감하다. 아들에게 영어 선수 학습으로 원한 풀이를 했다. 효과를 보진 못했다. 딸아이에게 다른 방법으로 원한 풀이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지에 살고 있던 고모네 집으로 보냈다. 그곳은 영어를 사용했고 인도 아이들이 많았다. 영어를 모르던 딸아이는 피지 아이가 욕을 했는데 못 알아듣고 웃었다. 나중에서 알고서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던지 가슴이 아파 지금도 울컥한다. 그 단어는 stupid이다. 유학까지 생각을 해봤는데 6개월 후 적응하려는 아이를 불러들였다. 내 원한 풀이를 내가 풀었어야 했는데 애들만 잡았다.


 내 원한을 풀 기회가 왔다.  하늘에서 "공부를 다하고 오라" 환청이 들린다. 어느 하나도 공짜는 없다. 아이들에게 원한을 푼 죄로 의자에 앉아 점점 엉덩이가 커지고 있다.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린다. 중간은 가려고 꾹 담은  입을  열려고 한다. 아침에 먹은 계란 냄새가 자꾸 올라온다. 머리도 띵하고 표지에 놀란 아저씨가 내 겉마음과 속마음이다. 어렵다. 왜? 외국말이니까. 그러나 나는 " l can do it. "이다.



2019년 11월 29일 맑고 낮에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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