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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Nov 30. 2019

목욕탕2

재수 없는 여자



  겨울 저녁의 바람은 매섭게 살 속을 더 파고든다. 짧은 햇살이 지고 나면  우중충한 회색빛 얼굴과  쭈그려진 어깨가 뽕을 넣은 듯 목덜미에 달라붙어 피곤함에 설설 긴다. 계단을 뛰여 오르니 늘어난 뱃살만큼 숨도 찬다. 물소리가 자박자박 들리니 엄마 뱃속에서 10달 살아서 그런지 안전한 놀이터처럼 편안하다. 안경을 벗고 습기 가득한 곳에 들어가니 물체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미간에 주름을 만들어 새댁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나보다 어리면 새댁이라 부른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나 다 그렇게 부른다. 아마도 나보다 서너 살 많은 분들은 나보고 새댁이라 부를 것이다.  인사를 나눈 꽃집 새댁은 쉰다섯 살이다. 두고 다니는 목욕 바구니를  찾아서 따뜻한 물줄기를 세차게 두들겨 맞고 나면, 엄마한테 볼기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난다. 코코넛 향의 비누가 향기 나는 여자로 만들어주고, 뻑뻑한 눈은 안약을 넣은 듯 맑아지며, 뭉친 어깨가 흐물흐물해지면 보디로션으로 기름칠하고 나온다. 목욕 예찬이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지는 여기는 목욕탕이다.



 기름칠해야 할 보디로션을 수건과 함께 담아놓았는데 없어졌다. 당연히 있어야 할 로션이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물기 닦은 몸이 점점 식는다. 지금은  밤 열한 시이다. 늦은 시간이라서 사람들은 여섯 명이 있다. 아는 새댁 두 명 빼고 나면  네 명이 낯선 인물이다. 각각의 앉은 곳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오른쪽 구석 물 뜨는 바가지 속에 일회용 샴푸와 린스, 칫솔과 함께 내 보디로션이 있다.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기에 가슴이 띈다. 차라리 안 봤으면  좋았다. 바가지를 들고 벌거벗은 수사반장은 "이게 그쪽 거예요?" 하며 묻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명 마지막 한 명이 사우나실에서 머리에 수건을 정갈하게 싸매고 두 무릎에 손깍지를 끼고 눈을 감고 앉아 있다. '아니겠지'하며 문을 닫고 나왔다. 돌아서니 추워진 몸에서 화가 난다. 묻지 않았던 사우나실에 조선시대 여인처럼 앉아있는 새댁에게 "이게 그쪽 거예요?"라고 물었다. "아~네." 하며 웃는다."그러려고 한 건 아니고요" 뭐 이 새댁이라고?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새댁은 웃으며 얘기한다."뭐가 그러려고 한 게 아녜요? 그럼 뭐 하러 가지고 갔어요?"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샴푸인 줄 알았다면서 또박또박 말도 잘한다. 사우나실 밖에서 들렸는지 5명의 여인들이 머리를 숙이고 집중하고 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무슨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당황은 내가 했다.



 절대 네버 끼어들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차라리 없어진 물건이라면 그러려니 했건만 목격을 했으니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겠다. 이방인처럼 들락거리는 나만의 쉴만한 물가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딪힘이 일어났으니 죽을 맛이다. 고렇게 단정한 새댁이 간신히  흐물거리게 만들어놓은 어깨를  원상복귀시켜놓았다. 발을 닦고 나오려는데 "미안해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새댁 이건 나쁜 짓이지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다음에는 절대 이러지 마요" 어른인 척  말은 했지만 마음은 쌍욕을 해주고 싶었다. 보디로션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실망스러움이 오늘 목욕탕을 괜히 왔다 싶어 진다. 미안하다는 새댁은 온탕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가는 나를 지켜본다. 그의 눈빛은 "재수 없게 걸렸어"였다. 진짜 재수 없다.



 다음날 아무 일 없는 듯이 나는 목욕탕은 들어갔다. 어저께 상황을 보았던 꽃집 새댁이 곁으로 온다.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근데요." 어제 내가 가고 매점 아줌마가 화가 나서 한참을 속상해했다고. 그 새댁이 4700원어치 물건을 사고 돈을 안 주고 가버렸다는 거다.  정신이 좀 이상한 새댁이 아니었냐고 묻는다. 잊고 싶은 기억을 소환하려 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저녁에 먹은 음식들이 좋지 않은 냄새로 올라온다. 밤새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그 새댁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분노가 되어 치 받친다. 뭐 하는 인간인가?  곱상하고 생긴 모습이  모두 홀딱 속을 만한 모습을 해 가지고 치사 방귀 같은 행동을 하고 사는 인물이 궁금해진다. 안경을 벗고 보았으니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고, 실루엣을 기억하니 역겨워진다. 혹시 다문화 여성은 아니냐는 꽃집 새댁에서 "절대 아니다. 토종 한국인이다." 정확한 한국어 사용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강하게  꽃집 새댁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목욕탕에서나 동네에서도 못 본 얼굴이 분명하다. 갑자기 나타난 새댁이 참 어이없게 이틀 밤을 속상하게 만든다. 늦은 저녁 어디서 와서 어디고 갔을까?  궁금증까지 더해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생각할 것이 많은 머릿속을 지끈거리게 한다. 




2019년 11월 30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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