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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01. 2019

나 12

 저녁을 즐기는 여자




 내 엄마는 게으름이 용서가 안 되는 분이셨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연탄불 갈던 손을 늘 거칠었다. 저녁에 일찍 갈면 연탄이 아까우니 잠을 아껴야 했다. 바지런함이 몸에 밴 엄마의 말 "죽으면 평생 잔다. 살면서 부지런히 육신을 움직여".


 느긋하신 아버지는 식사 후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눕고 싶어도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아야 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들은 잠이 많다. 칠순 된 큰언니 지금도 식탁에서 존다. 예순다섯 살 작은언니 아침잠이 많아서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늘 전화받으면 자던 목소리 이건만 안 잤단다. 나 또한 낮 시간에는 누워있으면 엄마가 "일어나"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가신 분이 다시 오실리 없으니 병이다. 모두 다 일하고 자식들은 학교에서 죽어라 공부하는 낮 시간을 즐기는 것은 엄마가 "움직여" 했던 말에 덧살이 붙어서 죄책감까지 생기게 됐다. 벗어나는 시간은 저녁이다. 대부분 TV 보고 쉬는 시간에 나는 슬슬 움직인다.


저녁을 즐기는 여자가 됐다. 걷기, 목욕하기, 책 읽기, 마트 일 보기, 배우고 싶은 것 기웃하기, 잠 실컷 자기. 엄마의 지독한 말 한마디 덕분이다. 한적한 소도시의 저녁은 어둠과 조용함이 일찌감치 손을 잡고 찾아온다. 비가 오는 오늘은 적막함도 데리고 현관문 앞에 서 있다.


2019년 12월 01일 빈 마음에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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