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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02. 2019

부모 형제 자식 2

 늘 그립다

                                                           



 계란 노른자를 얼굴에 바르고 누워있는 엄마는 계란이 마르는 도중에 말을 시키면 눈만 껌뻑거렸다. 얼굴의 따뜻한 열기로 살짝 익어서 꾸덕꾸덕해진 계란 노른자는 색깔이 진해지면 이마부터 천천히 살살 조심스럽게 띤다. 엄마 얼굴의 주름살이 그대로 그려진 계란 노른자는 가면처럼 떨어져 나왔다. 신기했다. 턱 밑에 붙어있는 찌꺼기를 마저 때고 나면 미지근한 물로 헹구고, 둥근 항아리 모양의 통에 하얀색 크림을 듬뿍 발랐다. 엄마 얼굴의 윤기는 참기름 바른 속이 꽉 찬 송편 같았다. 미제 크림이라는 이 화장품이 엄마의 호사로운 사치였다. 엄마가 가뭄에 콩 나듯 외출하는 신호다


 "엄마 어디 가?"하고 나는 물었다. "응 성배 아줌마 만나러. 고구마 삶아놨으니 먹어." 엄마는 손에 장갑을 끼며 대답했다. 치맛자락이 끌리지 않게 버선 발목까지 오는 한복을 입고 나간다. 작은 키에 단정하고 깔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옥 집에 마룻바닥은 양초를 발라 파리가 낙상하게 반질거렸고, 걸레는 행주처럼 집게에 매달려 햇빛 좋은 날 하얀색이 더 하얗게 마당에서 펄럭거렸다. 속옷을 자주 갈아입으라고 강아지처럼 뒤를 쫓아다니며 성화도 댔다. 손은 얼마나 큰지 모른다. 고구마를 삶으면 세숫대야만 한 양푼 그릇에 한가득 담겨있고, 김장은 멸치젓을 담는 큰 도라 무통에 200포기를 해서 동생들인 이모들을 불러 다 싸서 보냈다. 맏딸인 엄마의 머릿속에는 자식과 함께 친정 동생들도 자라고 있었다. 여동생 셋, 귀한 남동생 하나. 덩치들은 엄마의 두 배나 됐지만 삼촌은 늦은 저녁 돈을 달라고 문을 두드렸고, 이모들은 내 엄마가 자신의 엄마인 양 양심 없이 갉아먹었다. 엄마가 낀 장갑이 멋이 아닌 것은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손이 일을 많이 하면 커지는 것이 지금도 이해되지는 않지만 엄마는 마디가 굵어지고 거칠 거칠한 손을 부끄러워했다. 흰 망사 장갑을 꼭 끼고 물 한방을 안 묻히고 사는 여인처럼 계모임의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 옛날에 계라는 것은 돈이 먼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먼저 주고 1번으로 타서 유용했게 사용했고, 마지막에 타는 사람은 이자를 조금이나마 챙길 수 있는 수단이었다. 정말 믿는 사람끼리 하는 돈놀이였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늘 주판알을 굴렸다. 아버지에게는 티 나지 않게 친정에 보내야 하고, 다섯 자식도 건사하느라 애를 썼다. 아버지는 엄마가 친정에 보내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아시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것은 가족 모두는 말을 안 해도 눈치로 때려잡았다.


 엄마 기일이 돌아온다. 잊어먹지 않으려고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조카에게 문자를 했다. 엄마 제사상을 차려줄 오빠들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조카가 추도예배를 드린다.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북엇국과 홍시를 예배드릴 때 부탁해. 고모 성의니 조금 보낸다. 고맙고!" 이 말을 하는 것도 조카에게는 조심스럽고 미안하다. 김장을 준비하다가 엄마가 좋아했던 배춧속 양념으로 넣을 홍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엄마는 늘 그립다. 작은 발에 꼭 맞게 신은 엄마의 하얀 버선 코가 이리도 선명한지 모르겠다.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사뿐히 걷던 모습을 더해서.


2019년 12월 02일 바람도 불고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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