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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03. 2019

알아차림 1

비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옆 사람에게 묻는다. 스스로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단지 확인받고 싶어서 그냥 하는 소리일 거다. 비우는 것도 채우는 것도 내 몸은 나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 몸부림을 치고 모른척하고 도망간다.


아들이 20킬로그램을 빼고 나타났다. 살이 쪄서 허리와 무릎이 아프다고 한의원에 다니더니 조용히 밤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에 적당히 뺏을 때는 핸섬한 총각 같더니 살이 더 빠지니 얼굴이 할아버지가 됐다. 적당히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글을 쓰는 것은 내 마음을 비우기 위해 쓴다. 머리 속도 비우고 마음속에 이끼가 잔뜩 끼여있는 우물도 퍼내려고 한다. 마음에 저울은 살이 빠진만큼 저울 눈금이 줄지는 않는다. 요동치던 감정들을 밖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글로서 써본다는 것은 살을 빼는 만큼 힘들다. 적당히라는 기준도 없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닌 내 이야기를 화장기 없는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뭐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질퍽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도 없는데 혼자서 장구치고 북도 친다. 굿거리장단에 살풀이를 추듯이 가슴이 아파서 아우성치던 인연들과 이별을 하려고 나와 타협한다. 그리고 내 욕망과 상처들로 비롯된 오래된 기억들과 화해와 회복으로 가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많이 비우려고 매일 쓴다. 비우지도 못하고 가는 이들이 올해는 부쩍 곁에서 흔든다. 세월만큼이나 무거워진 머릿속과 마음속 무게를 줄이기 위해 글 위에서 달리기를 한다. 저울에 올려놓은 심장과 깃털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기를 기대하며. 




2019년 12월 03일 김장하는 날.  마음이 급하니  김치가 허옇다. 첫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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