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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15. 2019

부부 4

남편의 중성화 1


 남편은 점점 여성화가 되어간다. 합창을 좋아하는 남편과 작년 이맘때쯤 합창공연을 보러 갔다. 올해는 어찌해서 놓쳤는지 오늘 갑자기 달력을 보게 된다. 크리스마스 때 하려나 알아봐야겠다. 합창이든 뭐든 그다지 좋지도, 그다지 싫지도 않은 나 또한, 중성화 감정이 되어가나 보다. 


  작년 겨울 합창단 공연을 보러 갔다. 과거로 확 돌아가서 내가 다니던 고등 학창 시절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날이면 빵과 음료수도 주고, 모든 이에게 문을 활짝 열고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어찌 보면 건전하게 남학생 여학생들이 말을 섞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교회의 교자도 모르는 나는 친구 한숙이를 따라서 오빠들이 가득한 그곳을 크리스마스이브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날 행사로 합창곡 에레스 뚜가 웅장하게 들려왔다. 웬 신세계냐? 아직도 그때를 생각해 내는 것을 보면 장기기억에 꼭 박혀있나 보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모두 선남선녀들이었다. 하얀색 합창단복을 입었고, 어깨에 날개만 있으면 곧 하늘로 올라갈 듯 말이다.


 합창 첫곡으로 그때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Eres  tu ~~ Eres tu ~~ 어머나! 나는 그때 맨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남학생을 떠올리며  딱 요 부분 "에레스 뚜"만 따라 불렀다. 도취에 도취를 하려는 순간, 남편을 슬쩍 보았다. 이미 시작되었다. 얼굴은 홍매화요, 눈물 찔끔  콧물 찔끔 어쩔 것인가! 준비성 없는 남편은 닦을 것이 없다. 내 감정은 이미 연기처럼 날아갔고, 휴지 찼느라 여념 없는 나다. 코 닦아 줄 아들도 아닌데 이제는 휴지라도 챙기기를 소망하며 휴지 한 장을 더 준비한다.



 아버지가 남편 나이일 때 , TV를 보다가 훌쩍거리면 주책이라고 아버지를 향해 엄마는 한마디 하셨다. 그때가 오고야 만 우리다. 옆구리 찔러  휴지 한 장 더 주고 나니 측은지심 발동하여 위로 한마디 거들어줬다. 당신도 그 시절이 생각나서 그래??? 


2019년 12월 15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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