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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16. 2019

인연 4

  만득이



 찬바람이 불면 만득이가 생각난다. 무슨 인연인지 밉다가도 생각나고, 생각이 나면 마음이 짠하다. 나랑은 띠가 같은 12살 어린 개띠다. 오뉴월 개 팔자처럼 살기나 하지, 개띠라고 다 그렇겠냐마는 지나친 개에 대한 애정으로 청춘을 지나 불혹의 나이를 넘겼건만 여전히 만득이는 허름한 옷에서 개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안녕하세요 선생님"하며 그만에 미소를 띠며 등장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1년 전 만득이라는 개를 키우며 만났다. 만득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그의 애칭은 만득이가 되었다. 자신이 개를 키우다 보니 버려진 개들을 안타까워하며,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추운 겨울 유기견이 모여있는 개장을 청소하느라 손등이 다 터서 쩍쩍 갈라졌다. 묘약은 아니지만 안티 푸라 민 한 통을 건네니 손등에 바르며 불쌍한 유기견들 때문에 성격처럼 소리 내지 않고 운다. 유기견 견사를 청소해주고 돌아오는 길이다. 자신의 일은 색채가 아름다운 탱화를 그리는 일인데 유기견에 정신이 팔려서 손을 놓았다. 시집갈 나이도 지났고 어느 날은 본인도 지쳐서 "내가 죽어야 이 일이 끝날 것 같아요"라며 섬뜩한 얘기를 한다. 섬세해야 할 탱화 그리기는 그 손 가지고 어림없을 것 같다. 20년 동안 개장수에 끌려가는 개를 구출하고 오토바이에 끌려가던 개를 신고해서 주인을 혼내주고 야단법석 같은 시간들을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나는 만득이의 동조자는 아니다. 안타까운 눈으로 응시할 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웃이다.


 연말이 오면 작년처럼 그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진다. 일 년 동안 잘 살아온 것도 기특하고, 일 년 동안 시시비비로 큰소리를 내며 서로가 질질 짜던 것도 삭힐 겸 악수의 의미로 말이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도 그 안에는 사랑이 있다. 누구보다도 만득이의 사정을 잘 알기에 안타까움이 내 마음속 모두를 차지한다. 50을 넘기는 나이가 되는 내년에도 늘 건강하기를 빌며 "안녕하세요 선생님"을 부르며 아주 밝지는 않지만 은은한 미소로 만나기를 희망한다.



2019년 12월 16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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