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람생각 Dec 17. 2019

인연 5

그리운 사람만 만나고 싶다


 그립다는 형용사는 국어사전에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이다. 간절하다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이며, 절실하다는'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다'이다. 이렇게까지 그리움의 대상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한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같은 반 친구라서 좋으나 싫으나 매일 봐야 했고, 사회생활에서는 어쩔 수없이 부딪히니 만나야 했다. 이렇듯 만났던 인연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들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잘 지내고 싶어서 그 인연들과 용을 쓰며 울고불고도 했다. 이런 경험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없다고는 말 못 한다. 나에게 스치며 지나가는 인연들은 버스를 타거나 카페를 가거나 물건을 살 때의 만남 정도이다. 이 정도의 만남에서 기분이 나빴다면 쓰레기통이 "확"하고 집어던질 수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의 만남은 그리운 사람이고 싶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으로 이번 생이 소풍 같지 않은 어려움이다. 결혼과 함께 따라오는 시댁의 만남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평생 벅차다는 것을 몰랐다. 나의 무지에서 시작된 괴로움에 인연이었다. 그리움에 대상으로 만들려 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인고의 세월을 견뎠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덧옷을 입혀서 마음은 더 빈곤했다. 일찍 돌아가신 내 부모의 부재도 있었지만 시댁과는 물과 기름 같은 만남이었다. 나약한 항변마저도 마음속으로만 내뱉어야 했고, 뭉클하게 끓어오르는 입바른 소리는 이혼을 각오하고 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혼은 내 부모를 욕보이게 하는 짓이요, 이혼을 한 내 인생은 막장드라마 같은 인생이라 명명하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참는 것이 미덕이었다.


 이제 내 소망에 귀 기울여본다. 그리운 사람들만 만나고 싶다. 사람의 소리보다는 맑고 신선한 자연을 만나고 싶다. 사무적인 만남 속에는 헛물켜는 속셈이 보여서 싫다.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어서 만나는 내 모습도 별로다. 바깥 흐름에 따라가는 습관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허허로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어 진다. 주말 시부모님 산소를 간다. 어머님 기일이다. 좋아하시던 산적을 구워서 못다 한 용기를 내어 한마디 하고 오련다. "어머니 아버님 그리운 사람이 되어주시지 그러셨어요! 별다른 욕심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며느리입니다."



2019년 12월 17일 맑음

작가의 이전글 인연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