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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Mar 25. 2020

알아차림 9

늦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스무 살이 됐을 때 열아홉 살을 보면 내가 어른 같았고, 서른 살 때도 스물아홉 살 보면 젊어 보였다. 현실감이 빵점인 생각들은 이젠 늦었구나! 하면서 도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를 만들었다.


나이는 27살 키는 178센티 피부가 하얗고 내 눈에는 어디 하니 부족함 없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공무원 부모님 밑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7년째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부모님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노트북을 켜놓고 공부를 하는지 시간을 때우는지 어둑해지면 집으로 들어갔다. 중요한 건 청년의 마음인데 나와 똑같이 자신이 너무 늙었다며 24살만 됐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 청년뿐만 아니라 내가 만났던 무기력한 청년들의 공통된 심리였다. 늙지도 늦지도 않았다고 얘기해 주어야 하는데 마음만 다급했다. 그러다가도 얘기를 한들 잔소리 같을 것이고 무슨 얘기가 귀에 들어올까 싶기도 했다.

37살에 둘째 딸을 낳았다. 겨울에 낳아서 그런지 머릿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아닌 뼛속으로 파고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바람이 들어왔다. 무서웠다. 말 로만 듣던 산후조리를 못한 후유증이 양말을 안 신으면 발바닥까지 서늘했다. 나름 방법을 찾은 것이 목욕탕이었다. 막 걸으려 했던 12개월 된 딸을 데리고 부지런히 다녔다. 이곳에서 예쁘장한 아주머니는 한 분을 만났다. 대학병원의 간호 과장님이셨다. 살림만 하는 나와는 다르게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이 경제적으로 안정돼서 그런지 뭔가 모르게 여유로워 보였다. 대학 졸업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눈이 살짝 떠졌다.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제가 다시 간호 공부를 해도 될까요?"하고. "00 엄마 몇 살이지?"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내 나이를 듣고 작은 미소를 지으며"좀 늦었네"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단지 그분의 생각일 뿐인데 마치 정답인 양 나는 내 생각보다는 그분 말에 동감을 했던 거다.


늦지 않았는데 늦은 줄 알았다

늦지 않았는데 늦은 줄 알았다. 어쩌면 그분은 기억조차 없는 말 한마디가 날갯짓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재를 뿌렸다. 그렇다고 꼭 이 일 때문은 아니였을거다. 그 후로도 성장하고 싶어 뜨거운 마음이 불쑥불쑥 요동치는데도 깔아뭉개며 힘없는 중년의 길로 들어섰다. 늦었고 늙었다는 왜곡된 신념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자존심만 세졌다. 비교를 안 한다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고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은 능력자로 보였다. 바뀌고 있는 21세기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나이 오십이 가까워서야  배움과 익힘에 스스로 발을 내밀었다.


성장을 하니 사는 맛이 났어요

무조건 나보다 젊다면 까치집을 틀은 머리도 괜찮고 세수하지 않아도 봐줄 만하다. 그들에게서 내가 그리워하는 향기가 난다. 저녁에 걷다 보면 반바지 입고 자전거를 타는 친구보다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걷는 친구가 눈이 들어온다. 뒤따라 걸으며 복화술을 한다. '개나리가 꽃 몽우리를 피웁니다. 시작하세요. 무엇이든 하면 됩니다. 사람은 성장을 해야만 아침에 일어나고 싶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늙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늦었다고 후회하나요. 살아봤더니 늦은 것은 없었어요. 그저 어떤 것이고 해봐야 합니다. 지나고 보니 알았거든요. 모든 이들은 보이지 않는 다이아몬드일 수 있다는 것을.'



2020년 3월 25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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