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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Apr 02. 2020

걷기 3

사회적 거리두기와 걷기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남편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저녁시간이 한가해졌다. 저녁으로 매일 기도 모임에 나갔으니 비어있는 시간이 어색하고  해야 좋을런지 궁리하는 눈빛이었다. 며칠을 코로나 뉴스에 열을 올리다가  답이 없는 시간들을 어쩌지 못해서 걸으러 나갔다. 걷기는 짬짬이 하고 냈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걷기는 코로나 19 함께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는 혼자 걷기의 강도가 점점 높아진다.



걷기에 요령도 생겼다. 저녁밥 먹기 전에 운동복으로 미리 갈아입는다. 준비하지 않으면 눈이 들러붙어 어영부영 시간을 끈다. 숟가락을 놓으면서 양치질을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휙 나가면 성공이다. 1월 2월에도 조금씩 걸었지만 3월에는 하루 2만 보 이상 4시간 넘게 걷더니 체중이 4킬로가 빠졌다. 옆구리 살이 없어졌다. 걸을 맛이 나는 남편은 저녁시간을 기다린다. 걷고 오면  몇 보 걸었나 세어보며 눈이 반짝인다. 2만 9 천보를 아쉬워하며 현관 문틀을 부여잡고 들어온 적도 있다. 다리가 막대기같이 뻣뻣했을 거다. 일요일에는 성당을 가지 않으니 낮잠을 조금 자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길을 나선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처럼 무장하고 나간다. 선크림 듬뿍 바르고 목에는 스카프를 한다. 핸드폰 보조 배터리도 하나 샀다. 6시간 걸어도 핸드폰이 끊어지지 않고  듣고 싶을 것을 마음대로 듣고 걸으니 세상 좋을 수가 없단다. 작은 가방에 휴지와 물 한 병 사 먹을 천 원짜리 두세 장 챙기고, 당 떨어지면 원 플러스 원 초콜릿을 사서 하나 먹고 하나는 가지고 온다. 과하는 소리에 "알았어"하면서 소풍 가듯이 가방을 메고 나간다.



처음에는 같이 걸었다. 서로가 걷는 속도가 달라서 영 불편했다. "빨리 걸어라 천천히 걷자"하며 서로 괜한 소리를 해야 하길래  따로 걷는다. 따로 걸으니 오작교에서 만나는 견우직녀처럼 그런 만남도 있다. 저녁시간이 늦어질수록 걷는 사람은 없다. 한 바퀴를 먼저 걷고 내 쪽으로 뒤뚱대며 걸어오는 남편의 실루엣이 포착된다. 금방 저녁밥 먹고 나간 남편이지만 동지처럼 반갑다. 서로 큰소리로 부른다."여보"하고. 이때부터 수다를 떨며 같이 걷는다."이 다리는 몇 보요, 저 다리는 몇 킬로요." 남편은 다리 이름도 꼭 알아야 하고 몇 보인 지 기록도 해둔다. 별 관심 없던 나는 거저 배운다. 어두운 밤길이라 구름 속에 숨어있는 달님이 저절로 보인다. 시커먼 밤에 잠 안 자고 뭐 하냐 할지라도 따로 또 같이 열심히 걷는다.




2020년 4월 2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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