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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Apr 03. 2020

흰머리로 살아가기 3

도전과 성장


 3월에 '흰머리로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3만 명 넘게 글을 읽었다. 이만큼이나 흰머리에 관심이 많은가 싶어 깜짝 놀랐다.  내가 염색을 시작한 지도 20년이 되었으니 40세나 50세도 공감이 되었나 보다. 내 나이의 고민만은 아닌듯하다. 서른 중반인 아들도 새치가 많아서 조금만 지나면 흰머리로 기를까 하고 얘기한 적 있다.



올해 1월 코로나 19가 발현되기 전 대구에 모발 클리닉을 찾았다. 망설이다가 예약을 하면서 가슴이 뛰었다. 머리카락으로 병원을 갈 줄은 몰랐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빠진 머리카락을 몽땅 심고 싶었다. 머리의 상태를 자세히 보여보려고 한 달 정도 염색을 하지 않고 생머리로 묶고 갔다. 상담 결과는 머리를 묶으면 견인성 탈모가 생길 수 있고 탈모 진행이라기보다는 두피를 피부과와 상의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염색을 하고 나면 두피가 얼얼한 적이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어쩌면 당연한 듯이 생각했다. 며칠 지나면  별 이상 없이 60년을 견뎌온 두피이었으니까 말이다. 엄마 아버지 형제들 모두 모발이 굵고 많았다. 칠순이 넘은 언니를 봐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수리 쪽에 조금 빠지는 정도였다.


언니와 비교를 해보았다. 언니는 두 달 이상 지나고 염색을 했고 나는 앞머리는 보름에 한번, 전체적으로는 한 달이 한번 했다. 깔끔 떤다고 자주 염색을 했다. 악순환이었다. 우선 염색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더 늙기 전에 병원 치료보다는 염색을 멈춰보고 상태를 보고 싶었다.



어깨 밑으로 기른 머리카락을 귀밑 1센티로 잘랐다. 흰머리에 단발머리가 어울릴 줄은 모르겠지만 흰 머리카락이 길면 무섭지 않겠는가. 동네 모퉁이에서 기다란 흰머리카락을 하고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는 상상도 해보았다.  밖에 나갈 때는 모자를 쓰고 염색을 하지 않은 채 겨울이 지나갔다.


모자를 벗을 용기가 생겼다.

봄이 되니 모자를 못쓰겠다. 5개월로 접어든 흰 머리카락은 굵게 나와서 그런지 억세 보인다. 나에게서 친정아버지 얼굴도 보이고 나 같지 않은 낯선 얼굴도 보인다. 백모가 된들 뭐가 좋겠냐만은 자라고 있는 흰머리와 염색모의 경계선이 뚜렷한 지금이 보기 흉해서 흰머리가 빨리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여름이면 거의 흰머리가 될 줄 알았는데 기다리니 안 자란다. 한 달에 겨우 1센티 자랄까 말까 한다. 올 겨울이나 돼야 전체적으로 흰머리가 될 것 같다. 염색된 겉 머리카락을 단발로 내리면 검은 머리카락이 덥혀져서 별 차이는 없고 들추어보면 3분의 1 정도가 흰머리이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 흰머리만 찾게 된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 머리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반갑기도 하다.


도전

"염색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 점점 멀어진다. 염색을 하고 나면 바로 또 해야 하는 지겨움이 기다렸다.  안 왔으면 하는 염색은 얼마나 빨리 오는지 모른다. 기약 없이 계속해야 하는 염색을 생각하면 수족이 편치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하나 늘 걱정도 됐다. 중요한 건  앞 머리카락인데  삐죽삐죽 올라오는 것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숱도 조금은 많아 보인다. 휑해 보이던 앞머리를 남편에게 자주 들이대며 봐달라고 한다.매번 물어보니 영혼 없는 대답일 때도 있지만 어쩔 수없다. 그 머리가 그 머리인데 핀을 한 개 꽂고 또 물어본다. "많이 올라왔어. 좋아. 어울린다."빈말이라도 그래도 묻게 된다. 흰머리와 실랑이하면서 봄을 보낸다. 도전과 성장에 흰머리로 살아가기가 한몫을 하고 있다.

    

2020년 4월 3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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