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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 시대의 대탈출극

미국에서부터 가족과 함께한 도쿄 여행 - 시리즈 4

by 민킴

새벽 4시 반. 시차 탓에 눈이 번쩍 떠졌다. 어제 하루종일 피곤하게 이리저리 많이 다녔음에도 기가 막히게 새벽에 눈에 떠졌다. 만약 리조트나 휴양지였다면 커다란 호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수영장에 들러 천천히 브런치를 즐겼을 텐데, 여긴 도쿄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미 아침부터 “언제 나가냐”고 성화를 부린다. 결국 또 일찍 밖으로 나섰다. 목적지는 역시 마츠야.


이틀째 같은 곳이지만, 어느새 둘째 녀석이 자기가 직접 키즈 메뉴를 척척 고르고, 오빠와 상의해 추가 주문까지 하는 걸 보니 ‘적응’이라는 게 새삼 대단해 보였다. 아침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선 조식까지 또 한 상 뚝딱 해치웠다. 샐러드부터 생선, 미국식 메뉴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서 은근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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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배를 채운 뒤엔 미국에서부터 벼르고 있던 푸글렌 아사쿠사점을 찾았다. 푸글렌 아사쿠사점은 일본 전통과 북유럽 감성이 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으로, 회색빛 건물 1~2층에 자리해 있었는데, 보면 그냥 어디 서울 원룸촌의 건물 같은데 내부는 전혀 달랐다. 우드톤 인테리어가 미드센츄리풍 느낌도 나면서 무척 편안했고, 커피 전문점이면서 칵테일이나 맥주 같은 알코올도 판매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공수해 온 빈티지 가구들로 꾸몄다는데,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묘하게 특별했다.


오전이라 손님이 거의 없어 고즈넉하게 커피 맛을 음미할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머그 세트와 원두도 득템했다. 돌아와서 그 머그로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도쿄 풍경이 떠올라서, 커피 한 잔이 훨씬 더 풍성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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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글렌 커피 아사쿠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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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져올 커피와 머그컵 2개를 샀는데 더 살걸 그랬네. (출처: 푸글렌 홈페이지)

머그와 커피를 호텔에 내려놓고는 택시로 도쿄 국립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가족 모두 박물관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는 도시는 어딜 가든 박물관은 꼭 들르곤 한다. 미국 북버지니아에 살면서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을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아이들도 박물관이 거의 놀이터처럼 익숙하다. 특히 아들은 역사 덕후라 사무라이 갑옷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하늘도 너무 맑아서 “미국만큼 푸른 하늘이 여기도 있구나” 하며 몇 시간을 둘러본 뒤, 우에노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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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까지 걸어가다 보니 마침 스타벅스가 보여서 다시 한번 커피 타임. 일본 여행 중엔 카페가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해줬다. 걷느라 피곤해진 다리를 잠깐 쉬게 해주고, 갈증도 해소해 주고, 당연히 화장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잠시 쉬었더니 어느새 또 배가 고파졌다.


이번 목적지는 회전초밥 체인 쿠라스시. 스시로, 하마스시와 함께 일본의 3대 회전초밥 프랜차이즈라고 하는데, “맛있고 싸다”는 컨셉으로 해외 매장도 꽤 많다고. 사실 우리 집 근처에도 15분 거리에 쿠라스시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일본에서 먼저 경험해보게 됐다.


애니메이션 콜라보나 접시를 먹고 난 뒤 기계에 넣으면 테블릿 게임을 할 수 있는 등,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가 많아서 어린 자녀를 둔 가족 여행엔 제법 괜찮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아이들의 의견도 많이 반영이 되고있어 꼭 우리가 원하는 하이엔드급의 식당을 많이 가지못한것도 사실이다. 쿠라스시의 장점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만한 많은 액티비티가 있었고, 우리가 갔을땐 귀멸의 칼날과 콜라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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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두둑이 채운 뒤, 아사쿠사에서 전철로 대략 한 시간쯤 걸리는 시부야로 이동했다. 사람들로 가득한 스크램블 교차로가 유명하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처음엔 큰 감흥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닥 별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시부야는 나에게 있어 시부야계, Shibuya-Kei 로 통하는 2000년대 나의 싸이월드 BGM을 장식했던 하바드의 Clean & Dirty, 누자베스, 프리템포, 몬도 그로소, 그리고 다이시댄스 등인데, 정작 일본에서의 시부야계는 다른의미로 이미 자리를 잡았더랬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서보니 사람 물결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 속에서 그저 그냥 작은 점 하나 같았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묘하게 들떠서, 에어팟을 꽂고 예전부터 좋아하던 몬도 그로소의 ‘1974 - Way Home’을 재생했다. 엄청난 인파 사이에서도 음악과 함께 흘러가니, 마치 2000년대 초반 내 추억 속으로 살짝 돌아간 듯했다. 가족들은 내가 누구랑 통화하는 줄 알았더랬다.


https://youtu.be/B_6fspGWQSs?si=PTzxIV5Qa6tZFV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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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을 온전히 듣고 이어 시부야 109 건물 6층에 있는 원피스 무기와라 스토어에 들렀다. 이곳은 원피스 매니아라면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조명또한 샹크스가 루피에게 씌워준 밀짚모자로 되어있었다. 아들은 친구들 줄 기념품 및 선물을 골랐고, 나는 창가로가 스크램블 교차로를 몇번의 신호가 바뀌는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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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시부야의 밤이 찾아오고, 곧장 미야시타 파크 옥상공원으로 올라갔다. 스케이트보드나 클라이밍 같은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고, 뉴욕 하이라인 같은 도심 속 쉼터 느낌이었다. 미야시타파크에서 보는 시부야의 밤은 진짜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신주쿠와 더불어 도쿄에서 밤에도 제일 번화한 곳 중 하나라 그런지 해가 지면 더 생기가 넘쳐난듯 했다. 거리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상점들에서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사람들 웃음소리까지 섞여서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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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와본 사람은 그 화려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미야시타파크 아래에는 요코초 라는 이자카야 골목이 자리잡고 있었다. 포토스팟이었다. 약 100미터에 걸쳐 19개 정도의 점포와 이벤트 광장이 조성이 되어있었다. 이곳에서는 일본 전국의 다양한 특색있는 요리를 다 맛볼수 있다 했지만, 정작 일본어, 일본 요리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는 메뉴판 사진과 구글맵에 나와있는 리뷰위주로 음식을 시켰다. 화려한 조명과 분위기 때문에 어떤것이든 다 맛있었다.


재즈 클럽 같은 데서 한잔 더 하고 싶었지만, 정작 가장이 어디 그럴 용기가 있겠는가. 살짝 아쉬울 뿐. 그래도 시부야의 밤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날 밤은 시부야 특유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웃고 떠들고, 또 살짝오른 취기와시차때문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둘째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내가 업고 이동하는데도 힘들다는 생각보단, “여기가 진짜 도쿄구나” 싶은 감회가 더 컸다. 시차와 살짝 올라온 취기가 뒤섞여 시간마저 멈춘 듯한 느낌. 그 새벽부터 돌아다녔는데도, 도시가 주는 활기는 피곤함보다 더 강렬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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