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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 시대의 대탈출극

미국에서부터 가족과 함께한 도쿄 여행 - 시리즈 3

by 민킴

둘째 날 아침. 전날 저녁에 기분 좋게 걸쳤더니 그런지, 깊게 잘 자긴 했는데 시차 때문인지 새벽 5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게다가 애들도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인데?” 싶었는데, 창밖을 보니 벌써부터 도쿄는 분주했다. 자전거 타고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밤새 영업 중인 술집들, 그리고 미국보다 일찍 떠오르는 해 덕분인지 왠지 활기로 가득한 기분이었다.


아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나와 아이들은 살짝 호텔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 인파가 몰려 정신없었던 센소지를 한적하게 돌고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캐리어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으니, 어제와는 달리 고요한 느낌. 누군가 새벽에 다 치워놨는지 거리도 말끔하게 정돈돼 있어서 “역시 일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새벽의 센소지엔 산책 나온 어르신들, 출근 전에 잠시 들러 기도하는 사람들 정도만 있어서, 잔잔하면서도 분주한 기운이 묘하게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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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의 센소지




하지만 애들은 금방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쳤다. 호텔 조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편의점에서 대충 때울까 했지만, 그래도 “일본 스러운” 아침을 맛보고 싶었다. 마침 눈에 들어온 데가 규동 전문점 ‘마츠야’. 흔히 일본판 김밥천국 같은 곳이라는데, 유튜브에서는 너무 흔해서 잘 안 다뤄졌던 것 같다. 게다가 처음엔 간판 보고도 여기가 그 유명한 마츠야인지 몰랐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이른 시간부터 혼밥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고, 나이대도 다양했다. 출근 전에 후딱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가격도 싸길래 들어가 봤더니 주문 키오스크에 한국어가 크게 표시되어 있어서 괜히 뿌듯했다. 이 기회다 싶어 애들한테 한국어 공부 중요하다고 잔소리를 좀 했지만, 메뉴 사진만 보고 고르는 애들한테는 별 소용이 없었다.


키즈 메뉴가 달러로 환산하면 2.5달러 정도였는데, 아이들은 “일본 물가가 미국보다 훨씬 싼 것 같다!”며 신나 했다. 그렇게 즐겁게 아침 메뉴 한 상씩 해결하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 호텔 조식까지 또 이어 먹었다. 호텔 조식엔 생선 메뉴가 항상 빠지지 않는다는 게 미국 호텔과는 확실히 달라서, 꽤 색다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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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야에서의 간단한 아침식사, 키즈메뉴 및 아침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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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입간판 및 호텔조식


포만감을 한껏 채운 뒤, 우리는 츠키지 시장으로 향했다. 관광객이 많으며 바가지도 많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처음 온 일본에서 그런 걸 일일이 따질 기운은 없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건 다 먹고, 다 구경해 보자가 우리 계획이었다. 시장 초입부터 이것저것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서, 4명이 조금씩 나눠 먹으며 골목 사이를 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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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부엌이라 불리우는 츠키지 시장


그러다 잠깐 시장 중심부에서 벗어나, 구글 맵에 저장해 둔 ‘모토 다네’라는 스시집을 찾아갔다. 문 열기 전에 도착했는데, 우리 앞엔 일본인 한 분만 대기 중이었다. 메뉴판은 당최 알아볼 수 없었고, 파파고로도 글자가 안 읽혀서 옆 테이블에 앉은 오사카에서 여행온 가족이 시키는 걸 그대로 따라 주문했다. 영어가 통하는 분들이라 몇 마디 주고받았고, 비슷한 또래 딸이 있어서인지 금방 친해졌다. 츠라시도, 스시도 생선을 큼직하게 썰어 내주는데, 입안에 꽉 차게 숙성회가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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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다네 식당

든든하게 먹고 다시 츠키지 시장으로 돌아와 우니나 굴 같은 것들도 마구마구 먹어 치웠다. 애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중간중간 필수인 화장실과 더위 해소인데, 마침 시장 근처 혼간지 절 옆에 조그만 카페 겸 기념품점이 있어서 아이스 녹차며 빙수로 더위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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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간지 절 과 그 옆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와 빙수


점심을 든든히 먹고 휴식또한 제대로 취하고 도쿄역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겨우 식힌 더위를 또 다시 걷기와 지하철로 아이들에게 불평을 들을수는 없었다. 그냥 이 기분 그대로 편히 가기로 했다. 도쿄일번가 상점에서 점프샵 및 여러 캐릭터 샵을 거의 다 둘러봤다. 캐릭터 샵 만큼은 아이들도 지치지 않는 무한 체력을 보여주었다. 지브리 숍에선 내가 좋아하는 ‘붉은 돼지’의 포르코 로소 기념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여행 중엔 망설여지면 일단 사는 게 답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짐이 될까 싶어 사지 않았더니, 돌아와서 괜히 후회만 남았다


2023-07-25_12-17-47_136.heic 도쿄역과 맞은편에 위치한 도쿄역 일번가 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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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어 긴자로 넘어가 까르띠에 매장에서 결혼반지 세척도 받고, 긴자 유니클로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또 잠깐 숨을 고르며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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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이들에겐 긴자 거리가 큰 재미거리는 아니니, 오늘 메인이벤트는 역시 아키하바라였다. 우리 아들 녀석이 미국에서도 원피스, 블루락, 스파이 X 패밀리 등 온갖 애니메를 섭렵하고 있어서, 피규어랑 원피스 굿즈 구경하느라 눈이 반짝반짝. 결국 루피 밀짚모자 하나 장만했고, 그 뒤로 쭉 그 모자 쓰고 돌아다니면서 미국 유니클로에서 산 루피 티셔츠와 깔 맞춤해서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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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도쿄 여행은 걷기가 8할이라고들 하더니,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도 4명 이동하다 보면 가끔 택시가 더 경제적일 때도 있긴했다. 일본 택시비 및 교통비가 아무리 비싸다고는 해도 미국에 비하면 결코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스미다강 근처에 있는 ‘곰파치’에서 저녁을 먹었다. 낮에 잔뜩 먹어도 하루 종일 걷고 다니니 또 배가 고파지는 게 당연지사. 시차와 피곤이 겹쳐서 다들 살짝 지쳐가던 참이었지만, 맛있는 저녁 한 끼는 포기 못하겠단다. 그렇게 둘째 날도 맛있고 알찬 하루로 마무리. 내일은 또 어떤 풍경과 음식이 우리를 기다릴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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