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부터 가족과 함께한 도쿄 여행 - 시리즈 2
호텔에서 샤워를 잽싸게 마치고,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곧장 Hoppy Street를 지나 센소지에 닿았다. 큰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올 때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던 나카미세 상점들—스낵이든 기념품이든, 하나하나 구경하며 즐기는 데 푹 빠져버렸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원래 계획에도 없던 부채를 하나 샀고, 본당 근처에 가선 100엔짜리 점괘도 뽑았다. 아이들은 미국에선 좀처럼 맛보기 힘든 '사람들로 북적이는' 분위기가 재밌었는지, 시종일관 신나 보였다.
늦은 점심은 유튜브에서 미리 찜해놨던 ‘몬자야끼 젠야’로 향했는데, 예상대로 이미 자리가 없었다. 대기명단도 빼곡히 차 있었는데 전부 일본어라 도무지 알아볼 도리가 없더라. 그래도 뭐, 영어로 이름 대충 써놓으면 언젠가 불리겠지 싶어 용감(?)하게 내 이름을 휘갈겨 적었다. 언제 불릴지, 불려도 내가 못 알아듣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나는 가게 앞을 지키고 아내와 아이들은 아케이드 안 상점가를 구경하고 다녔다. 시바카페도 가보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온 ‘앨러지(알레르기) 주의보’ 때문에 일단 패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우리는 잽싸게 들어가 앉았다. 유튜브에서 본 그대로, 일단 음료부터 시켰다.
“하이보르 구다사이” “나마비루 구다사이” 일본에서 꼭 한번 외치고 싶었던 말이다.
미국에서 만들어 마시던 하이볼보다 알코올 맛이 쌔고 단맛이 적었지만, 그래도 여긴 도쿄 아닌가. 도쿄에서 맛보는 하이볼은 또 뭔가 달랐다. 생맥주도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오사카에 사시는 마 부장님 처럼 자연스레 “캬—” 소리가 나왔다. 미국 맥주와는 달리 살짝 물맛 나는 느낌이었지만, 이상하게 그게 더 좋았다. 일본이기에, 미간 찌푸려지는 ‘그 맛’ 말이다.
몬자야끼는 배를 빵빵하게 채우기보단 술안주 느낌이 강했다. 처음 본 몬자야끼의 재료가 담긴 그릇은 마치 팥빙수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곧 달궈진 불판 위에서 모락모락 익어가는 냄새에 술도 점점 당겼다. 뜨거운 열기와 알코올 기운이 맞물려 얼굴은 빠르게 붉어졌고, 조그만 미니 주걱으로 바닥에 눌어붙은 마지막 한 숟갈까지 긁어먹고서야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모두 만족스러운 도쿄에서의 첫 끼였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호텔에 데려다 재웠고, 나는 아내와 단둘이 Hoppy Street로 다시 나섰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시간. 돈키호테에도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도쿄에 왔으면 안 마시면 손해라는 ‘어쩐지 모를 사명감’이 발동했다.
우리도 합류해야지. 퇴근 후 동네에서 가볍게 한잔하고 웃으며 떠들다 집에 가는 이들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각자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매일을 이렇게 마무리한다면 그래도 삶이 조금은 살 만하지 않을까.
마음에 드는 가게들에 들어가려 했지만 자리가 없어서, 조금씩 발품 팔다가 “나카무라야 아사쿠사 킨타 바”라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기다렸더니 다행히 2인 테이블이 났고, 우리는 가게 바 대신 거리 쪽 테이블에 앉았다. 아사쿠사의 야경을 보며 도쿄의 공기를 더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만에 또 허기가 슬슬 올라왔는데, 메뉴판을 보니 안 시킬 이유가 없었다. 아사히 맥주 본사가 보이는 수미다강 쪽을 바라보며 아사히 맥주도 시키고,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안주들을 마음껏 골랐다. 대화는 계속해서 “엔화와 달러” 이야기로 이어졌지만, 그마저도 ‘도쿄 감성’에 푹 젖어 있어서 유난히 즐거웠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첫날밤은 흘러갔다. 아이들, 나, 아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곳을 만끽하며, 내일부터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시작과 동시에 ‘다음’을 기다리게 만든다는 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