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조된 자유라고 표현하듯 돈은 세상 많은 것들을 취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코찔찔이 꼬마는 떡볶이 사 먹을 돈을,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최신 휴대폰을, 직장인들은 새로 나온 자동차를 구입할 돈을 욕망한다. 저마다 욕망의 색은 다를지언정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더 많은 돈을 욕망하는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을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 욕망이 성장 동력이 되어 경제가 돌아가게 된다. 결국 모두가(혹은 절대다수가) 부자가 되기를 욕망한다는 가정하에 돈이 많은 사람은 단지 자유가 더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부 자체로써의 권력을 지니게 된다.
권력은 무엇인가? 나의 영향력으로 타인이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 권력이다. 반장의 말에 아이들이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도 권력이고, 엄마의 말에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양치를 하는 것도 또한 권력이다. 사장님의 업무 지시는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이고,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분의 심기를 살피게 되는 것 또한 권력이다. 즉,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잠재력도 권력이니 굳이 그 권력의 칼자루를 휘두르지 않아도 권력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는 거세게 그리고 자주 휘두른다. 그것이 자신에게 권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반장, 부모, 사장 등 우리 사회가 합의한 권력은 의무와 병행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병행된 의무가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라는 선택사항이 있기는 하다만 참으로 마음 편한 권력이 아닌가 싶다.
직장 내 연차가 쌓이며 조금씩 권력의 크기가 커진다. 점심 메뉴를 정할 때 내가 먼저 짬뽕을 외치면 줄줄이 짬뽕을 시키고, 내가 조용히 밥을 먹으면 다들 조용하다. 내가 침울하게 폭락한 주식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한숨을 푹푹 쉬며 주식 이야기를 한다. 내가 신나서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모두가 경청 모드에 들어간다. 그중 더욱 충성하는 이들은 추임새로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업무로 복귀할지 아니면 커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눌지에 대해서도 내가 정한다. 카페인이 당기는 날이면 내 권력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내 마음이 바쁜 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바삐 업무로 복귀한다.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도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내가 정한 목표치에 다다를 때까지 매진한다. 말투를 조금 더 건조하게 업무적으로 하면 업무의 속도가 한결 빨라진다.
어려서 반장 한번 못해보고 집에서는 막내라서 권력을 누려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맛을 몰랐다. 그런데 막상 권력을 누려보니 묘한 쾌감이 있다.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내 의중대로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쾌감. 권력의 정점이 아님에도 이 정도인데 더 큰 권력을 가진다면 얼마나 유혹적일까 싶다. 게다가 돈이 가져오는 의무가 병행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더해지면 이른바 절대 반지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권력의 달콤한 유혹을 스스로 깨닫고 경계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썩는다. 조직이 병들고 내 정신이 경각심을 잃고 부패를 가속한다.
우리 부서 사람들이 모두 짬뽕을 먹게 된 그 날 이후로 절대 먼저 주문하지 않는다. 식당에서도 의식적으로 화제를 주변 사람들에게 토스한다. 식사는 같이 하더라도 커피 한잔의 여유는 지켜주려면 슬쩍 빠져주는 게 좋다. 업무 방식도 각자의 방식이 있음을 존중하려 한다.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가치도 많다는 것을 스스로 상기한다. 의식적인 노력이 결여되면 못된 욕망은 슬글슬금 고개를 쳐든다. 예외도 없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경계한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다.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을 뿐이다. 처음 입사하면 일을 배우는 시기를 거치게 되고, 연차가 쌓이면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쳐주거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지게 되는 시기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책임질 시기를 보내고 있을 뿐 후배들보다 대단하고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이 시기도 머지않아 지나갈 것이니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떠나야 할 시기가 되면 축복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