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by 바보

아들이 눈만 뜨면 놀아달라고 엉겨 붙던 시절이 있었다. 팽이치기를 100판 하고 끝말잇기를 100판 한 다음 레고를 가지고 영화 두세 편을 찍었던 그 시절. 100판 하고 한판만 더 해달라고 조를 때 그냥 못 이기는 척 한판 더 할걸. 물론 그 한판 더가 실제로는 100판 200판 더가 되겠지만 뭐 어떤가.


과거를 그리다 마음이 먹먹해진다면 그것은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지각하는 순간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과거란 아무리 그리워도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 되는 곳임을 일깨운다. 그리워하는 것 그리고 그 시절을 되뇌는 것, 딱 거기 까지가 허락된 영역이다. 반면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는 과거의 나와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마음껏 휘저어서 현재를 바꿔 놓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몰입시키고 상상의 나래를 한없이 확장케 했던 그 세계관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기대와 흥분보다 우려가 앞선다. 살아온 발자취를 잔뜩 흩트려도 여전히 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수정하고 싶은 과거의 발자취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회의에서 비율을 뜻하는 'ratio'를 '라티오'라고 발음했는데 사회자가 '레이쇼'라고 정정해줬던 기억과 여드름 범벅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버스에서 자주 마주치던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건네었던 순간은 가능하다면 수정하고 싶다. 그리고 논산 훈련병 시절의 어느 무덥고 비 오던 토요일, 모처럼 여유롭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점심식사 대열로 정렬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판초우의와 군화를 번개와 같은 속도로 착용하고 식당에 들어가 판초우의를 벗는데,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음을 자각한 순간은 정말 지우고 싶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지나온 시간의 적분이 나의 인생이고, 그런 어리바리한 과거의 행적들도 엄연히 한 부분이니 그것들을 모두 없애고 매끈하고 세련되게 만들 수 있다 한들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아들이 5학년이 되었을 때, 놀아달라고 엉겨 붙는 시절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놀아줬다. 처음엔 놀아주다가 나중에는 정신없이 뒤엉켜 놀았다. 일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무조건 칼퇴하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가서 해질 때까지 놀았다. 캐치볼을 하는데 어둠이 짙게 깔려 공이 잘 안 보이다가, 좀 더 시간이 지나서 공이 사라졌다가 코앞에서 나타나고, 좀 더 시간이 지나 시야가 아닌 육감에 의존해 공을 잡다가 실패해서 둘 중 한 명이 공에 맞아야 끝이 나곤 했다.

둘이 노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나중에는 아들의 친구들과도 놀고,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모아서 놀고, 비가 오면 비 맞으며 눈이 오면 눈 맞으며 놀았다.

인생에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아들과 노는 때였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듯 그 시기는 지나가버렸다. 당황스럽도록 느닷없이. 예보도 유예기간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는 사춘기와 함께 페이드 아웃 없이 품 안의 자식은 떠나간다.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 청소년이 찾아온다. 그 친구는 예민해서 말 한마디 거는 것도 조심스럽다. 낯선 청소년을 바라보다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 청소년에게는 아득하기만 한 기억이 나에게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에겐 별거 아닌 그 날이 나에겐 시무치도록 그리운 날이라니 뭔가 서운하고 억울하다. 늘 사랑의 무게는 같지 않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아래로 흐른다. 중력처럼.


부질없고 서운해도 딱 한 번만.

욕심부리지 않고 딱 하루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닳아 없어지도록 팽이를 치고 밤이 새도록 끝말잇기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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