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남의 사랑

by 바보

"최대리는 연애를 분기별로 하는데.. 하아~~~"

"인기 많아서 어디다 써? 사랑은 일생에 딱 한 번만 성공하면 그만인 과업이라고. 여러 번 성공하면 오히려 골치 아파. 열명 데리고 살 거 아니잖아?"

흔남 박 대리는 훈남 최 대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듯했다.


"후우~ 저 장가갈 수 있을까요?"

"왜 못가? 이렇게 알짜배긴데 당연히 가지. 아직 한참 젊은데 느긋하게 생각해. 결혼 빨리 해서 뭐해."

"빨리 애들 키워놓고 자기 삶을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순서만 바꿔서 젊을 때 자기 삶을 살다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아이 키우는 것도 괜찮지 않나?"

"그렇죠? 소개팅 그만두고 하고 싶은 거나 하면서 살까 봐요, 한동안은.."

"그래, 다그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연애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주말에 소개팅 안 하면 이제 뭐하면서 보내려고?"

"교회에 가보려고요, 아는 선배가 교회에서 만나서 한 달 만에 결혼을 했는데 그 교회 소개해주기로 했어요."

"아 소개팅을 그만하겠다는 말이었네, 연애가 아니라. 하긴 연애를 멈추면 젊음이 아니지."

그렇게 한참 동안 뫼비우스의 대화가 이어졌다.

산악회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가입하는 줄 알았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등산 모임(산행 크루라고도 부른다는데 산악회와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묻지 못했다..)이 핫하다는 소식과 와인 동호회에 가면 자연스럽게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되어서 커플 성사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흔남 박 대리의 연애 무기는 성실함과 열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이 노오력으로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기회도 만들지 않는데 인연이 될리는 더욱 만무하다.


"박 대리는 사랑이란 노력이라 생각해? 아니면 인연이라 생각해?"

"갑자기요? 저는 노력이라 생각해요. 옛날에는 인연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노력인 것 같아요. 인연을 찾는 것도, 완성하는 과정도 다 노력 없이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과연 그러하였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집-직장의 무한 루프에서는 답이 없으니 알고리즘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집-직장-동호회-교회-산행 크루-와인 동호회 이렇게 거미줄을 잔뜩 치고 기다려야 인연이 생기겠지 싶다가도,


우주를 운행하는 섭리를 생각했을 때 인연이 그렇게 단순할까 싶은 의문이 솟아올랐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중력 때문임은 유치원 다니는 조카도 안다. 하지만 질량을 가진 물질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즉 인력이 왜 작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인력은 우주의 섭리 중 아메바 같은 하찮은 것일 텐데 우리 인류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것도 물질인 육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서로를 강력하게 잡아 끄는 힘 즉, 사랑과 인연을 너무 만만히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영화 '데스티네이션'을 보면 죽음의 운명이 무슨 짓을 해도 끝끝내 찾아오는데, 다소 이상한 비유이긴 하지만, 인연이란 것도 실은 거대한 우주의 섭리 중 한 부분이어서 피하려고 한다고 피할 수 없고, 끊으려 한다고 끊을 수 없는 게 인연 아닐까? 집-직장의 견고한 무한 루프의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고야 마는 게 인연이다! 산속 암자에 틀어박혀 고시공부만 하고 있어도 길 잃은 처자가 문을 두드리며 시작되는 게 사랑인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고귀한 영역인 사랑이 동호회를 가면 이루어지고 안 가면 이루어지지 않는 하찮은 존재 일리 없어!! 그래선 안 돼!! 절대 안 돼!!


"부장님, 왜 대꾸가 없으세요? 눈빛은 또 왜 이리 흐릿~해? 아! 부장님! 또! 아~ 진짜, 또!"

"아.. 미안.. 근데 다 듣고 있었어.."

"또 딴생각했죠? 아 진짜 부장님 다른 사람 말 너~무 안 들으셔."

이전 06화젊은이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