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靑春

by 바보

사계절이 모두 있어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 배웠지만 그때마다 '봄 만은 예외지 않나? 여름, 가을, 겨울에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다 싶다가도, 싱그러운 봄날에는 부디 봄날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기를, 봄꽃은 오래오래 시들지 않기를, 매일 아침 산들바람을 타고 퍼지는 꽃향기에 눈 뜰 수 있기를 소원하지 않는가? 그러니 봄만 주야장천 계속되는 나라도 제법 괜찮지 않을까?' 하고 삐뚜름한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곤 했다. 나는 누구라도 나와 같은 마음 이리라 생각하고 친구에게,

"오늘 같은 봄만 계속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그렇지 않니?" 하고 물으니

"야, 그러면 수박은 언제 먹냐? 호빵은 무슨 맛으로 먹냐?"라고 대답해서 모두가 같은 마음은 아님을 알았다.

다른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봄이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푸르게 돋아난 봄날의 새싹을 닮은 청춘(靑春)이 흘러가는 게 항상 아까웠고, 청춘의 시기가 모두 지나가고 한점 남아있지 않은 지금의 내가 슬프다. 혹자는 나이 듦을 여물어가는 곡식에 비유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아름다운 단풍에 비유하기도 한다지만 그런 말들이 내 마음에 위로가 되어줄지는 몰라도 치료제가 되지는 못했는지 여전히 슬프다. 아마도 마흔이라는 나이가 늙어버린 육신을 체념 하기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이르기 때문인 듯하다.


과장 시절에 한 인턴과 바닷가 펍(PUB)에 앉아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과장님은 너무 좋으시겠어요. 억대 연봉에 외제차에 비싼 아파트에 편안한 가족에 없는 게 없으시니 세상 부러울 게 없으실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저는 인턴 끝나고 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만 들어요.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걱정되고. 과장님 나이가 되면 저도 과장님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여기서 사족을 조금 붙이자면, 당시 연봉이 억대가 아니라 딱 일억이었고, 해외 파견근무를 하던 때라 각종 수당이 더해져 세전 연봉이 그러했다. 외제차를 탔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나라에서 현대차를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아주 자그마한 외제차를 탔었다. 당연히 중고차였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소유한 아파트 시세에 대해서는 그 친구에게 말했던 기억이 전혀 없고, 부동산 사장님과 대화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디 가서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전혀 없다. 그러니 미래가 불투명한 20대 청년의 눈에 비친 기성세대의 모습이 이러하다 정도로 이해하고 대꾸했다.

"나는 @@씨가 부러워요. 진심으로. 조금 부러운 것도 아니고 샘이 나서 몸이 뒤틀릴 정도로 부러워요. @@씨는 젊잖아요. 청춘이 있잖아요. '자네는 젊으니까 기회가 많아! 그러니 청약도 열심히 도전하고! 입사원서도 다들 100개씩 낸다고 하니 200개씩 내고! 열정적으로 일해서 승진도 하고! 결혼도 팍 하고!' 뭐 이런 뻔한 이야기 하는 거 아니고, @@씨 듣기 좋으라고 없는 마음 꾸며내서 하는 말도 아니에요. 정말 진심으로 부러워요."

"네?"

"청춘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무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신이 나타나서 저 앞바다에 전 재산을 던져버리면 청춘으로 되돌려 주겠다 하면 지금 당장 버릴 거예요. 내 전재산이 비루해서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요.(^^;;;)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서 갖게 된 삶의 지혜를 가지고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젊은 날의 혼돈의 시기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하더군요.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혼란과 마음의 생채기를 쏙 빼면 그게 무슨 청춘이겠어요. 그건 온전한 청춘이 아니라 생각해요. @@씨가 겪고 있는 혼란의 시기를 나도 겪었고 그때 생긴 마음의 생채기는 지금도 아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멋진 거잖아요. 그래서 나에게는 없고 @@씨는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청춘이 샘이 날 정도로 부럽다는 말이에요. 다만, 걱정은 좀 줄여도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지나고 보니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며 낭비했던 젊음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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