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할 책의 제목을 정했습니다.

by 바보

시공간을 초월해서 나의 생각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일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조금 과장을 덧붙여 연금술처럼 환상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연금술이 무엇인가?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이 아니라 금과 아무 관련 없는 물질을 금으로 변환시키는 마술 혹은 기적 아닌가? 종이 위에 잉크로 새긴 자음과 모음들이 만들어낸 음가들이 타인의 마음에 타고 들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 놓으니 연금술에 비교함이 지나친 비약은 아니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간질간질 해."

"무슨 말이야? 너 무슨 글 써?"

"틈날 때마다 깨작깨작 글을 써, 대단한 글은 아니고, 아직도 일기를 쓴다- 뭐 그 정도로 설명할 수-"

친구는 성질이 급하다

"뭐? 일기? 나이가 몇 갠데 아직 일기를 쓰냐? 너 답다 너 다워~ 안네의 일기야 뭐야."

"나 좀 진지해, 작가가 되고 싶어! 그게 내 꿈이야. 마지막 꿈."

"요즘에도 그런 생각 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너 답다 너 다워. 친구니까 한마디만 해도 돼?"

하지 말라면 안 할 건가? 그리고 보통 이런 말은 무례한 말의 예고인데..

"책 쓰는 거 돈 안된다. 요즘 누가 책을 읽는다고. 김영하나 유시민처럼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나마 팔리겠지."

연금술까지는 아니어도, 책을 쓴다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꿈꾸고 동경하리라 생각했던 건 지극히 나 중심적인 사고였나 보다. 그런데 일각 안심되는 부분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쁜 '김해나'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 반 남자아이들 반이 고백을 했었고, 나머지 반은 자신감이 없어 표현을 안 했을 뿐 같은 마음이었다. 이른바 '그 시절 우리들이 사랑했던' 김해나는 예쁜데 성격이 좋았다. 아니, 우리 반 남자아이 반을 매정하게 차 버려서 울렸으니 성격이 좋다는 것이 기억의 왜곡일 가능성이 있겠다. 그렇다면 사실여부가 확실한 명제는 '김해나는 예뻤다.'와 '우리 반 남자아이 모두는 김해나를 좋아했다.'는 두 가지 명제가 남고 이 둘을 조합해보면 '남자는 예쁜 여자를 보면 일단 사랑에 빠지고 본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니 한 남자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여자가 누가 봐도 예쁜 여자라면 진정성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봐야 함이 바람직하다.

그러니 만약에 '글을 쓴다는 건 참으로 숭고한 일이야, 네 말처럼 연금술에 비유할 만큼 환상적인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일을 네가 하고 있구나! 대단해! 멋져!' 이런 식의 반응이었다면 오히려 불안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니 적어도 타자의 꿈을 공유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해 보였다.


내친김에 내가 쓴 글을 (정말 운이 좋아서)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면 제목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는지 (김칫국물을 시원하게 원샷하고) 생각해보았다. 연필을 들고 노트에 끄적인 지 10분도 채 안되어 노트 한 바닥이 가득 찼다.


- 걱정 마, 봄이 되면 꽃이 필테니

- 승진하지 않아도 괜찮아

- 너그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당신이 그리워하는 그 날은 언제인가요?

-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는 게 행복 아닌가요?

- 사라져 버릴 한 줌 구름 같은 인생이라지만

- 요즘 들어 행복해

- 늙어만 가는데 왜 행복하지?

- 마음은 청춘인데 꼰데라 하네요

-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 작가가 되고 싶어서 쓴 책

- 나만 읽기 아까워서 쓴 책


여기까지 쓰고, '아이디어 뱅크가 이런 것이로구나! 오늘 머리가 핑핑 잘 도는구나!' 라며 나 자신에게 칭찬과 사랑을 아낌없이 주고서 멈췄다. 그리고 내가 책을 (정말 운이 좋아서) 출판한다면 어떤 게 좋을는지 아내에게 물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 '걱정 마, 봄이 되면 꽃이 필테니'인데, 당신 글을 보면 진지할 땐 한없이 진지하지만 대체로 웃긴 글들이 많아서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는 게 행복 아닌가요?'도 좋은데, 그래도 가장 당신 다운 제목은 '나만 읽기 아까워서 쓴 책'인 것 같아. 당신은 솔직하니까."


이 말을 듣고 (정말 운이 좋아서)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면 '나만 읽기 아까워서 쓴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리라 (김칫국물을 시원하게 원샷하는 기분으로) 결심했다. 공처가라서가 아니다. 아내가 틀린 말을 한걸 여태껏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야,, 뭔가 입에 붙지 않아.

'혼자 보기 아까워서 쓴 책'이 좋은가? '혼자 읽기 아까워 출판하기로 마음먹은 글'이 좋은가?

출판해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김치 국물을 너무 진지하게 마시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

그때 가서 고민해야겠다.

이전 14화욕의 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