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기록하며 생각하고 느낀 것 또한 나의 역사의 일부이기에 그 시간을 통해 얻은 유익과 아쉬움에 대해 기록하려 한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이에게 작은 유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함은 다음과 같다.
1. 기억이 보존된다.
기억력에 의존하여 저장되어 있는 추억들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보면 막히는 부분이 많음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을 자세히 기록하려 하면 더욱 많은 부분의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소실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근래 사건은 덜하나 10년, 20년 전의 기억은 대부분 여러 개의 파편으로 조각나 있고, 그 작은 파편들도 희미해져서 기억을 더듬고, 친구나 가족들에게 묻고, 그래도 채워지지 못한 부분들은 최대한 의미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복원해 이어 붙일 수밖에 없다. 30년 전의 기억은 거의 사라져 있다. 사진으로 남겼던 순간이나 내 몸에 흉터로(혹은 마음의 흉터로) 남겨진 사건이 아니고서는 거의 사라져 있다. 길지도 않은 인생에서 남는 건 추억뿐인데 그 마저도 죄다 소실되고 최근 몇 년의 기억만 남는다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은 점점 노쇠한다. 그러나 글로 복원한 추억들은 사진보다 더 생생하고 선명하게 새겨진다.
과거를 돌이켜 살펴보면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마치 현재 의료기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냉동 보존하다 기술력이 완성되어 환자를 깨워서 치료하듯, 과거에는 해석도 되지 않던 문제를 돌이켜 좀 더 발전된 처방으로 개선할 수 있다.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한다.
3.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
인간은 지극히 나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데 그 생각을 문장으로 옮겨놓고 들여다보면 얼마나 안으로 굽었는지가 보인다. 게다가 그 문장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된다는 전제가 깔리면 좀 더 깐깐하게 살핀다.
이러한 유익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이다.
기록되지 않은 불완전한 기억과 사념보다는 객관적이겠으나 자그마치 '역사'라는 단어를 들먹이기에는 너무나 주관적이다. 역사라 하면 객관성이 생명인데, 내 손으로 기록한 나 자신의 기록이란 애초에 객관성과는 상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역사라기보다 생애 일기 정도의 명칭이 합당하겠으나, 그런 이상한 말을 도대체 누가 알아듣겠나? 아무튼 이 글은 누더기처럼 기워진 기억의 파편 위에 객관성이란 1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을 덮어서 완성한 기록이다. 다만 나의 삶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겠다.
2.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그리고 말할 수 있다면 이미 비밀이 아니다.
비밀이라면서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는 비밀부터, 친구에게는 알려줄 수 있는 비밀과 가족까지만 가능한 비밀을 거쳐, 나 혼자만 아는 비밀, 그리고 떠올리는 것조차 불편해 자주 꺼내보지 않는 비밀, 내 정신이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지워버린 비밀까지 그 깊이는 다양하다. 나의 역사에 포함된 비밀은 비밀이라면서 실은 떠벌리고 다니는 수준과 친구에게 까지 공유하는 비밀이 대부분이고, 절친에게만 공개하던 비밀도 익명성을 믿고 약간은 포함시켰지만, 여전히 그 아래층으로의 접근은 불가능하게 차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반쪽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