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몽

by 바보

요상한 꿈을 꿨다. 꿈 특유의 휘발성 때문에 많은 부분이 날아갔지만, 이번 꿈은 상대 배우(?) 중 한 명의 얼굴에 붙어있던 기분 나쁜 털 하나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상당 부분 휘발되지 않고 남아버렸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4~5명의 친구들과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물론 강의는 진행되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교수님을 유심히 봤는데 '교수님이 원래 저렇게 예뻤나?' 생각하는데, 교수님이 점점 다가와 자세히 보니 '사이코' 뭐시기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었다.

장면이 바뀌고(혹은 중간 장면이 휘발되고..) 강의가 끝나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하교하는데, 교수님이 나를 그렇게 챙기더라며 혹시 교수님이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니, 내가 없을 때 와서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그 눈빛에 분명 애정함이 느껴졌다 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가 대사를 던지는데 그게 압권이다. '교수님이 우리보다 2살이나 많은 누나인데 그게 말이 되냐?'

와~ 진짜 아무리 꿈 이래도 그렇지, 갑자기 내가 풋풋한 대학생이 되고, 또 예쁜 연예인이 교수님으로 등장하는 것도 참 가당찮은데, 그 둘을 연결시키기 위해 대학 새내기보다 고작 2살 연상의 교수라니.. 하긴 평소에도 자기중심적인데 꿈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싶기도 하다만..

아무튼, 교수님과 나는 말하자면 썸을 타는 설정인 것이다. 또 장면이 바뀌고, 좁은 편의점에서 우연히 교수님과 마주쳤다. 나는 친구들의 말이 의식되어서 부끄러운 마음에 아는 체도 못하고 나가려는데, 워낙 좁은 편의점이라 나가다가 눈이 마주쳐버렸다. 교수님도 분명 알아봤을 텐데 어쩐 일인지 내 눈길을 피하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좁은 틈을 비집고 나가려는데 손등과 손등이 스쳤다.

와~ 진짜 아무리 꿈이라도 그렇지, 고작 손이 스쳤을 뿐인데 너무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에서 깨버렸다.


잠에서 일어나 생생한 꿈의 내용을 한번 복기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인가 생각했다. 일단 예지몽은 아니다. 내가 다시 스무 살이 될 리도, 그 연예인과 썸을 탈리도 없다. 팬심으로 꾼 꿈도 아니다. 나는 그 '사이코' 뭐시기 드라마의 제목도 온전히 모르고, 어쩌다 와이프가 그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걸 지나가다 보고, '요즘에는 저런 여자가 인기 있구나, 그런데 목소리는 왜 저리 걸걸해? 담배 피나?' 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팬심으로 꾼 꿈은 절대 아니다. 몽정도 아니다. 손만 스치는 몽정은 들어본 적이 없다. 춘몽이라는 단어가 있나? '일장춘몽' 할 때의 그 춘몽을 따로 떼어내서 쓰기도 하는지 모르겠으나 굳이 명명하자면 '춘몽'이란 명칭이 어울릴 듯하다. 나의 봄날을 그리워하는 마음, 다시 설레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꿈, 춘몽.

스무 살의 내가 마흔 살의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마흔 살의 내가 스무 살의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혼돈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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