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끝 후반전 시작'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인생 전환점을 돌아가는 감회를 기록하기 시작하고 100편을 넘겼네요.
처음엔 새로운 취미 거리를 찾아보려는 요량으로 글 열 편을 썼습니다. 쓰다 보니 재미가 붙어 스무 편을 넘겼습니다. 마흔을 기념하여 쓰기 시작했으니 마흔 편을 채우면 좋겠다 싶어 좀 더 썼지요. 마흔 편을 다 채웠는데, 또 쓰고 싶은 욕망이 샘솟지 뭡니까. 좀 고민하다가 마흔 편을 넘기고도 계속 썼지요. 그렇게 쓰다 쓰다 여든 편쯤 쓰고선 마음 우물이 말라 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곧 바닥이 보이겠다 싶어 조만간 그만두겠구나 했습니다. 프로 작가가 아닌 이상 굳이 쥐어짜야 할 이유가 없지요.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포도송이가 그려진 종이를 하나씩 나눠주며, 독서록을 쓸 때마다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주겠다 했습니다. 얼마나 실한 포도인지 포도송이가 자그마치 100개가 달려있었습니다. 하나 둘 붙이다 보니 반을 채웠고, 고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꼭 100개를 채우고 싶어 지더군요. 그래서 나중에는 새로 읽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것들로 공책을 채웠더랬죠. 토끼와 거북이, 심청전, 흥부와 놀부 등등의 것들로 말이죠. 100편을 다 채웠더니 공책 세권 분량이더군요. 그렇게 포도송이 100개를 다 채우고 받은 선물은 공책 한 권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사기당했다 싶었습니다.
하여튼 이때 숫자 100이 각인되었던지 발행한 글이 여든 편을 넘어서는 100편까지는 써야겠다는 괜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100편이 목표가 되니 숙제도 아닌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무감과 부담감도 생기더군요. 여름휴가를 앞두고서는 이것들을 빨리 해치우고 홀가분하게 휴가를 떠나야겠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휴가를 맞이하긴 했지만요.
숙제를 다 못해서 조금은 찜찜한 마음으로 떠난 여름휴가인데, 우물이 급격히 차올랐습니다. 이대로 두면 넘칠듯하여 급하게 몇 번 퍼올렸더니 금세 목표했던 100편에 도달했습니다. 집-직장의 쳇바퀴를 돌 때에는 있는 힘껏 쥐어짜야 마른오징어 액기스 뽑듯 힘겹게 한 편의 글이 나왔던 것이, 기차에 몸을 실으면서부터 생막걸리 거품 흘러넘치듯 그냥 막 흘러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동안은 메말라 있었나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일상에서 소모되는 정신에너지가 많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콘센트 뽑았나? 쓰레기 비울 때가 되었나? 바닥에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지? 청소기 새로 살까? 이번 주말엔 꼭 청소해야지. 그런데 설거지가 제대로 안됐네. 수세미 새 걸로 바꿀 때가 됐나? 그나저나 설거지 당번은 누구 차례지? 난가? 식기 세척기를 사볼까? 이번 달엔 공과금이 얼마가 나왔으려나? 우유 유통기한이 언제였더라? 아이고 지났네.. 먹으면 배탈 나려나? 죽진 않겠지? 택배가 오늘은 오려나? 어디서 곰팡이 냄새가? 에어컨 필터 청소할 때가 된 건가? 김대리에게 맡긴 업무는 잘 되고 있는 건가? 하~~ 인사이동 폭풍이 곧 불어닥치겠군.. 후덜덜. 아참! 공문 처리 기한이 언제였더라? 앗, 지났구나..ㅠㅠ, 시말서 양식을 어디에 뒀었지?' 이런 식이니 잠잠히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세상살이를 관조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눈떠서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열심히 쳇바퀴를 돌려야지, 딴생각이라니요. 그 순간 굴러 떨어집니다.
더 쓴다고 누가 공책 한 권 주는 것도 아니지만 이미 차오른 것들은 해소해야겠기에 조금은 더 써봐야겠습니다. 일상이 시작되면 어차피 조만간 마르겠죠. 이미 시끄러운 세상에 소음을 더하는 건 아닌지 염려되는 마음이 분명 있지만, 모두가 종달새 소리만 좋아하는 건 아닐 거예요. 요란한 매미소리를 여름의 즐거움으로 삼는 이가 분명 있을 거예요. 그렇죠?
어차피 매미는 여름 한철만 웁니다. 저도 조만간 그만 쓸 거예요. 매미소리가 그치면 저도 그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