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류블랴나로 이동할 때 이용한 버스에서 기사님 바로 뒷줄 4자리를 점령하고 누워있는 민폐 승객을 발견했다. 자다 깬 민폐 승객이 버스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지인인가 했다. 그런데 좀 더 가다가 민폐 승객이 운전대에 앉더라. 그리고 운전하던 기사님이 뒷좌석으로 와서 민폐 승객과 같은 자세로 눕더라. 나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다. 9시간의 거리를 2교대로 운전하는 노동 문화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한가! 승객의 안전을 생각해도 바람직하지만, 우리 모두는 소비자이며 동시에 노동자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바람직하다. 6시면 상점 문을 닫고 퇴근하는 문화도 같은 이유로 무척 반갑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노동자로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노동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불현듯 스리랑카의 꼬불꼬불한 산지를 오르는 버스가 떠올랐다. 도로에 떨어진 낙석과 낙하물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가며, 마주오는 자동차와 부딪힐 듯 가드레일도 없는 가파른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좁은 꼬부랑 길을 오르고 오른다. 달리는 게 신기한 구식 버스의 엔진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고, 매연은 새까맣다. 에어컨이 없어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덥고 습한 공기와 함께 앞차가 뿜어낸 까만 매연과 비포장도로의 먼지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도로가 안 좋아 밤이 돼서야 도착하지만 또다시 출발해야 한다. 졸음을 쫓으려 베텔(씹는담배)을 연신 씹어대서 이미 입가가 벌겋다.
유럽의 1인당 GDP는 4만~8만 달러이고, 스리랑카는 그나마 요즘 많이 올라서 4천 달러 정도다. 같은 일을 하고, 아니 더 힘든 일을 하고 손에 쥐는 돈은 10분의 1, 20분의 1이란 말이다. 여기에 근무 환경과 복지 수준까지 고려하면 그 격차는 더 크다. 프랑스는 주당 근무시간을 35시간으로 했고, 독일은 주 35시간도 많다며 28시간으로 줄였다. 연간 30일 정도의 연가가 주어지고, 병가는 며칠이든 가능하다. 반면 스리랑카에선 죽도록 일하다가 아프면 직업을 잃게 된다.
즉,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가 그 사람의 연봉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런데 개발도상국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고, 선진국에서 태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한 사람도 없다는 점에서 국적의 차이가 야기하는 무지막지한 삶의 질 차이가 조금은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발전된 나라에서 태어난 행운을 감사히 여기고, 그 행운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나누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그런데 개도국에서 태어난 자체가 파렴치한 죄라도 되는 듯 인종차별을 일삼는 이들이 있어 심히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