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직장을 잃으신 뒤 우리 가족은 산 중턱 달동네로 이사를 가야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지만, 너도 나도 다 가난했기에 무엇이 가난인지 몰랐다. 동네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모여서 놀았고, 동네 어른들은 기꺼이 우리 모두의 부모가 되어 주었다. 아랫동네 사람들이 달동네라 칭할 때의 묘하게 기분 나쁜 뉘앙스가 거슬렸을 뿐, 그걸 제외하면 유년시절의 기억은 대체로 파스텔 톤이다.
월세방이 가득한 동네에 가보면 어릴 때의 나처럼 불법 주차된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노는 천진한 아이들을 보이는데, 왜 이리 짠한 마음이 드는지... 하지만 그 아이들의 속마음은 모를 일이니,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이 가난인지 모르고 파스텔톤 유년기를 보내고 있기를 기도할 따름이었다.
동티모르의 어떤 마을을 찾았을 때, 신발도 없는 아이들이 너무나 신나게 놀고 있었다. 상대적 결핍도 아니고 절대적 가난의 나락에 처한 아이들인데 왜 이리 행복해 보이는지? 현지 직원에게 통역을 부탁해서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건지, 왜 이리 행복한지 물어봤더랬다. 아이들의 대답은,
"몰라요, 그냥 신나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이 죄다 허상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