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를 기억하자.
코로나가 가져온 내 일상의 변화중 하나는 외식 대신 밀키트나 배달음식을 주로 이용하는 것이다. 어제 퇴근길부터 배가 고팠던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달 어플을 켰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족발집에서 보쌈을 시켰다. 족발집에서 족발이 아닌 보쌈을 시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같은 사람이 많아서 주문이 밀렸기 때문인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파 짜증이 났고, 배고픔을 견디다 주섬주섬 간식을 주워 먹으며 30분을 더 기다렸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다 보니 주문이 제대로 안 들어간 게 아닌가 심히 의심스러워졌고, 좀처럼 하지 않는 확인 전화(아마도 항의 전화)를 하게 되었다. 띠리링~
"안녕하세요? 보쌈 소자 주문한 사람인데요, 5시 반에 주문을 하고 7시가 되었는데 배달이 오지 않아서, 혹시 주문이 누락된 게 아닌가 염려되어 전화드렸어요."
"아! 그거 지금 배달 나갔어요~ 그런데 우리 아르바이트생이 실수로 서비스 막국수를 안 넣었대요~ 다음에 주문할 때 전에 막국수 서비스 못 받았던 집이라고 꼭 말해주세요~~ 그러면 막국수 두배로 드릴게요~ 보쌈은 금방 도착할 거니까 맛있게 드세요~"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현관 벨이 울렸다. 배달원 아저씨께서는 누가 옆에서 '하이~ 큐!'를 외쳐 등장한 배우처럼 나타나 보쌈을 내려놓고 퇴장하셨다.
식욕이 씻겨 내려가고 그 자리에 화가 차오름을 느꼈다. 다시 어플을 살펴보니 '보쌈 소자 28000원+서비스 막국수'로 표시되어 있었다. '보쌈 소자+막국수 28000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중국집에서 서비스 군만두를 누락했을 때는 그럴 수 있다 싶었지만, 보쌈에 막국수가 빠지다니, 이게 적당히 넘길 일인가? 내가 나긋나긋한 말투가 아니라 전투적인 말투로 전화를 했더라도 똑같은 대응이었을까? 최악의 평점과 댓글로 응징해야 하나? 게다가 배달이 늦어졌음에 대한 사과도 전혀 없었다. 평일 5:30에 주문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나! 나를 무시한 건가!! 이렇게 분노 게이지를 쌓아가던 중 문득 어떤 고약한 악플을 달아서 이 가게를 망하게 할까 궁리하고 있는 못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황금률이 떠올랐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처음 일을 배우는 인턴사원들은 상상치도 못한 큰 사고를 치기도 한다. 그들의 실수가 곧 상사인 내 책임으로 귀결됨이 당연한데, 막상 그런 일이 생기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는 완벽하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에도 수많은 실수를 하는데 그중 몇 개는 은근슬쩍 넘어가고, 몇 개는 허겁지겁 대충 수습하는 정도로 그친다. 나태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이 겹치다 보면 집중력의 한계에 부딪혀 실수를 하게 되고, 완벽하게 수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엎질러진 물처럼 완벽한 수습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지 결코 귀찮아서가 아니다. 나는 다행히도 코 워커, 타 부서 직원, 거래처 직원, 상사, 부하직원이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기에 지금껏 잘리지 않고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요즘은 배달을 담당하는 직원을 따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외주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더라. 배달료가 무료라는 말은 배달비 2000원~3000원을 가게에서 부담한다는 말이고, 빠트린 막국수를 추가로 배달하기 위해서는 4000원~6000원을 부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로열티 등을 제하고 남는 순익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15000원짜리 치킨을 팔아서 남는 돈이 3000원 남짓이라던데 보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게다가 새로 생긴 가게지 않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누구든 처음에는 서툰 게 당연하다. 나의 처음은 어땠나? 지금도 허당이지만 초짜 시절엔 정말 어마무시했다.
늦어진 배달에 대해서도 어쩌면 남모를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 저녁부터 족발이나 보쌈을 시키는 사람이 흔치 않고, 그러다 보니 갓 만든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족발과 보쌈이 완성되는 시기를 7시쯤으로 맞추는 걸 수도 있다. 초저녁부터 들어온 예상치 못한 주문에 어제 팔다 남은 음식을 내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새로 삶기로 마음먹은 건 사장님의 초심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소설인가?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닐까?
오늘 뿌린 씨앗이 언젠가는 나에게 반드시 돌아온다고 하지 않나? 내가 악플로 분풀이를 한다면,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 분풀이를 당하겠지. 반대로 내가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나 역시 언젠가 나의 실수를 너그러이 감싸줄 누군가를 만나게 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화가 수욱 내려가고 그 자리에 식욕이 다시 차오름이 느껴졌고, 보들보들하게 잘 삶아진 보쌈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