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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Kim Apr 13. 2021

답답한 스무 살, 어쩌다 보니 마흔 살.

꽃다운 나이 스무 살을 곰곰이 되내어보면 답답했던 날들이 스믈스믈 떠오른다.

꽃다운 나이와 답답한 날들은 어울리지 않는 듯싶지만 이 둘은 이십 대 내도록 공존했다.

생기가 넘치고 절대적인 건강이 있던 시절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가슴 답답한 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소설에서 플라타너스 잎이 가슴을 덮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는 묘사를 읽고, 내 가슴은 바나나 잎으로 꽁꽁 싸맨 것처럼 답답하다 생각했더랬다.

얼마나 앞이 캄캄하고 속이 답답한지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을, 그것도 깡소주를 빈속에 들이부었고,

제대로 피지도 못하는 담배를 피우며 어둑해질 때까지 노량진 뒷골목을 배회했더랬다.


꿈꾸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라지만 그 당시 내게 꿈은 사치요 독이었다.

군대라는 큰 강을 건너야 했고, 그 뒤에는 취업이라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강을 건너고 벽을 넘어 살아남더라도 그 뒤에 낙원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없었다.


한숨이 늘어나고 왜 살아야 하나 싶었다.

오늘은 막막했고 내일은 두려웠다.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는 버거웠고 지갑은 가벼웠다.

빈 지갑처럼 내 존재도 가벼웠다.

눈물 나게 외롭고 추웠다.

나 자신이 늘 못마땅했고,

이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장가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더랬다.


무심히도 시간은 흘렀고,

어쩌다 보니 강도 건너고 벽도 넘었다.

어쩌다 보니 장가를 갔고, 아이는 쑥쑥 자랐고, 나는 마흔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지갑이 뚱뚱해졌고, 나도 뚱뚱해졌다.


하.. 고작 과체중이 되려고 그토록 아파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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