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함은 좁고 한쪽에 치우친 상태를 말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여러 지역에 살던 친구들이 한 교실에 모였을 때, 나는 다른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이 드세다는 느낌을 받아서 쉽게 친해지지 못했었다. 다른 초등학교라 해봐야 큰길 건너 @@초등학교와 시장에 붙어있는 $$초등학교 출신이니 딴 동네 사람이라 말할 수도 없음에도 차이를 느꼈다. 딱 잘라 설명할 순 없지만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은 뭔가 장사치의 후예 느낌이었다면, @@초등학교는 벚꽃 길이 멋들어진 아파트촌이어서인지 아이들도 뭔가 부티가 나고 깍쟁이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에는 나와 다르다 느꼈던 친구들은 예외 없이 공고나 상고로 빠지고, 또 다른 의미에서 나와 다르다 느껴지던 아이들은 특목고로 빠졌다. 그리고 뭔가 나랑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안정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대학수능에서 나는 당시 400점 만점에 378점을 받았다. 내가 진학한 학과 커트라인은 376점에서 끊겼고, 우리 과에서 장학금을 받은 아이는 381점을 받았다고 했다. 즉 수능에서 376~381점을 받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집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특성을 단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점수대에 있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묘하게 닮았다. 말하자면 전국 2등만 모아놓은 집단이랄까? 모범생의 전형이긴 한데 그렇다고 최고는 아닌, 유별나거나 까탈스럽지는 않지만 알량한 자부심이 있어 조금은 얄미운, 성실하고 부지런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건 아닌, 정점을 찍지 못했다는 면에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열등감과 미련을 가진, 나 홀로 깨어있는 듯 사회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면서 내가 가진 기득권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인간들의 모임에 나는 속해 있었다.
초, 중, 고를 거치며 점점 동질 집단으로 옮겨가는 동안 점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된 것과는 달리,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이유는 아마도 지나치게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마주하게 되니 거울을 보듯 그들을 통해 나를 보게 되고,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단점들이 부각되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렇게 불편할 정도로 비슷한 인간들과 모여 직장생활을 지난 십수 년째 해왔고, 앞으로 또 십수 년을 더 해야 한다. 그리고 은퇴해서는 나와 비슷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게이트볼을 치며 노년을 보내게 되겠지. 어쩌면 내가 죽어서 가게 될 추모공원에는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물 안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우물을 벗어나 열심히 팔딱팔딱 뛰다 보면 무지개 개구리, 날개 달린 개구리, 독 개구리, 뿔 달린 개구리 등 다양한 개구리들을 만날 수 있겠지만, 알량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청개구리 우물이 주는 확실한 안락함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윗동네 개구리들은 불청객들을 야멸차게 쫓아내고, 아랫동네 개구리들은 다른 동네 개구리들을 진흙탕으로 끌고 가서 잡아먹는다는 흉흉한 소문만 무성하니, 뒷다리에 힘이 풀려 저 우물 꼭대기를 향해 뛰어오를 힘이 없다. 그러니 별수 있나. 우물 안 개구리가 별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