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Kim Sep 27. 2021

할아버지 눈썹을 잘라내다.

 주제 파악 못하고 한없이 고개를 쳐드는 눈치 없는 것들의 결말은 분명하다. 눈썹 한가닥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머리카락처럼 자라나니 별수 있나, 잘라낼 수밖에. 삐죽 튀어나온 눈썹 입장에서는 분명 억울하겠지만, 열심히 자라난 게 어찌 죄가 될 수 있냐며 스스로를 변호하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러게 주위를 좀 둘러보지 그랬냐.


 바깥에서 보면 훤히 보이는 것들이 막상 그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감정에 묻히고, 편중된 생각에 묻히고, 허영심에 묻혀서 혼자만 모른다. 세상 사람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른다.


그 여자가 밀지도 당기지도 않는 건 사랑이 아니라 어장관리임을 그 남자만 모른다.


떠나간 그 남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음을 주변 사람 다 아는데 그 여자만 모른다.


반장 선거에 나온 그 친구에게 표를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그 친구만 모른 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선거운동을 한다.


이번에 부장으로 진급될 사람은 최 과장이 아니라 이 과장임을 최 과장만 모른다. 그러면서 홀로 설레어한다.


과속운전과 난폭운전을 일삼는 박 대리의 차를 한 번이라도 얻어 타본 이들은 박 대리가 오래 살기는 글렀음을 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왜 이렇게 운이 없어서 사고가 많이 나는지 모르겠다 한다.


식상한 멜로디만 재생산하는 작곡가는 자신이 만든 음악을 사람들이 왜 듣지 않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예술을 모른다 한다.


매력 없는 보이스를 가진 가수는 다른 길을 찾는 게 현명한 판단임을 본인만 모른다. 그러면서 원래 아티스트는 가난하고 고독한 거라며 자위한다.


영양가 없는 글만 써대는 작가는 본인이 쓴 글이 재미없고 쓸모없음을 모른다. 그래서 밤낮 써댄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은,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영양가 없는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단체메일이라도 보내주면 좋겠다는 거다. 희망고문을 3년째 당하고 있자니 나 자신이 눈치 없이 자라난 눈썹처럼 영 못마땅하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 팔이 소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